“이미 많이 들었겠다만 내 마음은 여전해. 사랑해.”
“그런 낯뜨거운 말을 이젠 아무렇지 않게 내뱉네.”
“칭찬?”
“그럴리가. 되게 낯짝 두껍다구.”
“이런 닭살스런 말 듣고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는 니가 더 두껍지.안 그래?”
“뭐...그것도 정답. 그럼 이만.”
“아..아니! 뭐야! 대답은 해주고 가야 할 거 아냐!”
“......뭐?”
“대답..말이야.대답.”
“난 박정민 같은 타입이 너.무 싫어~ 됐지?”
당신이 날 사랑하는 낯
당신이 날 사랑하지 못할 밤
당신의 낮 당신의 밤
W.심각한비증
“....내가 이제 몇 번째였지?”
“응? 뭐가?”
“....김형준한테 차인지.”
“너 그거 아직도 새고 있었냐? 횟수도 잊어먹을 만큼인데...”
“.....음..저번이 여섯번째 였나, 일곱번째 였나?”
“......일곱번째 였었지,아마?”
“히익- 그럼 지금 차인 거까지 더하면..”
“야! 너 또 고백하고 왔냐?”
“응, 8번째다. 8번째.”
정민의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면서 규종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끌끌 찬 뒤 지금까지 정민이 형준에게 차였던 8번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리고선 생각이 끝났는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정민을 바라보았다.
“...미친 것들....진짜...너 같은 애는 없을거다,아마.
아니..똑같은 애한테 8번이나 차이면서도 꾸준히 좋아하는 너도 대단하지만
8번을 똑같은 표정으로 거절하는 걔도 대단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솔직히 말해서...계속해서 고백해대는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정성이 감사해서라도
고백 3~4번에 80%가 넘는 사람은 다 받아들이는데 말이지.”
“아,그럼 도대체 뭐야.난!”
“....안됐군, 정답은 하나지.”
“뭔데?”
“진짜로 니가 죽을듯이 싫은거지...”
“쌰앙-,김규종..죽인다?”
“아니,맞잖아~ 풉..”
“뭐가!”
“큭큭...그래도...뭐 포기 안 하는 건 보기 좋다고!”
“포기는 배추 셀 때 포기하는 거잖니!”
“.............아,거지새끼. 70년대 화이팅 개그 치는 것 좀 봐. 나 같아도 안 받아줘.”
“샷업!”
“그런데..너 아직도 마음 안 접었어?”
정민이 단호한 표정으로 규종을 보며 밝게 웃었다.
“아직 남은 두번의 기회에 올인!”
그런 정민을 보면서 참 별종이라는 듯 규종이 허탈하게 웃었다.
*
형준에겐 모든 게 흥미가 없었다. 모든 대학생들이 술마시고 잠자고 놀고를 반복하고 있을 그 즈음, 형준은 여전히 먹고살기가 바빴던 터라 공부 따위는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고 돈을 버는데만 급급했다. 그 덕에 학사경고를 받을 위기에 몇 번이나 처했으나 그의 사정을 아는 선배,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것까지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런 형준에겐 예전부터 그를 좋아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정민.
형준보다 조금 더 큰 키에 항상 활짝-하고 웃어주는 미소가 참 예쁘고 예의바르고 매너가 좋다고 해서
다른 대학교에서도 다 알고 있을법한 인물이였다. 뭐 사실 앞에 말했던 것들은 ‘플러스 항목’이고 가장 중요한 건 그의 수려한 외모였다.
그런 정민이 형준에게 그렇게 구애작전을 펼치는데도 ‘도도한’ 형준은 도저히 넘어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 덕에 정민은 속이 탈 지경이었다.
웬만하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차갑게 또 도도하게 구는 사람은 없다.
진짜로 ‘죽을듯이 싫지 않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후아.”
형준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뒤 물기를 닦아내고 MP3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밖으로 나섰다.
이어폰에선 크고 경쾌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형준은 지금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 들어가 맨 끝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자마자 바로 엎드려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늘 수면이 부족해 보이는 형준이었다.
“...푸하하!”
“그래서 오늘 이 녀석 다크써클이 강림한거야?”
“어제 그렇게 쳐마실때부터 알아봐야 했다니까!!”
“큭큭큭..하여튼.”
동급생 친구들과 어울려서 강의실 안으로 들어오던 정민이 당연스럽다는 듯이 맨 끝자리부터 찾았다.
형준이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었다.
친구들은 중간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자 정민은 맨 끝자리로 가 형준의 옆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정민이 형준에게 말했다.
“....어이, 일어나시지?”
“........”
“너도 어제 뭘 했길래 이렇게 못 일어나냐~ 어? 일어나~”
“........”
“출석부른다니까?”
“.......”
정민이 완전히 잠에 빠진 듯한 형준을 보면서 아무래도 깨워야 된다고 생각한 듯, 형준을 툭툭쳤다.
“김형준!김형준! 일어나.”
“...........”
그렇게 정민이 계속해서 형준을 툭툭치면서 깨우려고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형준이 꿈틀대더니 잠을 깨워서 짜증난다는 듯 인상을 팍 쓰며 일어섰다.
“아씨..”
“....아,깨워서 화났어?”
“..........”
“수업해야지!”
“..........”
이어폰을 듣고 있어 아무것도 안 들리는 형준 앞에 정민이 입모양만 보였다. 하지만 무슨 말을 했냐고 되물어 보고싶지가 않아서 그대로 정민을 무시한 체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형준을 보며 정민이 씁쓸하다는 듯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