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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남자
Past Story 44 ▶▶ Thing of the Past
For 정민,규종
그게 그들의 첫만남이였고, 정민은 그 일로 인해 현중의 밑에 들어오게 되었다.
규종의 반발이 거셌지만 현중은 그런 규종을 무시하고 정민을 제 옆에 두고 다니게 되었다. 과연, 정민은 자신의 의사에 의해 들어 오게 된 조폭은 아니였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짭짤한 수입과 선량한 시민들의 돈을 뜯고 매일 싸움만 하러 다니는 조폭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 듯 제게 맡겨진 임무를 잘 해내었다. 그런 과정에서 정민은 현중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빠른 시간 안에 그의 옆을 보좌하게 될 수 있었다.
처음엔 조직 안에서도 계속해서 티격태격하며 싸워대던 규종과 정민이였지만, 언젠가부터는 정민은 규종에게 유독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미운 정도 정이라더니 그 정이 사랑으로까지 발전하여버렸다.
"김규종, 너 이렇게 땡땡이 치다가 또 보스한테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
"야,그건 니가 카바 좀 쳐줘~"
"한두번도 아니고..보스가 눈치 좀 챈 것 같단 말야."
"아~그래도 니 말이면 껌뻑 죽는 게 보스잖아! 응? 아,나 진짜 오늘까지만 놀고 안 놀게! 정민아~ 내가 믿는 거 너뿐이잖아! 응? 아,제발~"
"아..진짜 안되는데.."
"야. 넌 나 좋아한다면서 그런 것도 못해줘?!"
"아니,뭐 그게 아니라..보스도 눈치챌 것 같고."
"나보다 보스가 더 중요해?"
"아,알았어. 미안해,미안해. 보스한테 내가 말 잘할테니까..너 진짜 오늘까지만이야?"
"오케이! 그럼 나 쟤네랑 놀아야 되니깐 내일 봐~"
규종이 정민에게 손을 흔들며 클럽 안의 여자들에게 다가가고 정민은 그런 규종을 보며 걱정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다가 자리를 빠져 나왔다.
나이트클럽을 빠져나온 정민이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정민이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여보세요."
-나야.
"아,보스!"
-너 김규종 어디있는 줄 아냐? 이 자식이 또 연락 두절이네.
"아..규종이요? 전 어디갔는지 잘 모르겠는데.."
-진짜야?
"네?...뭐가요?"
-요새 김규종이 너 믿고 사고를 좀 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아,아니에요! 보스. 요새 규종이 일할 시간에 어디 술마시러도 안 다니고..여자한테 작업도 안 걸고..도박도 안 하러 다녀요!!"
-그래,뭐 니가 그렇다면야..언제 들어올건데?
"저 지금 들어갈게요. 이 지역은 별로 문제 없는 것 같아요."
정민이 핸드폰을 끊고 주머니에 넣으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스,죄송해요.. 저도 규종이가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정민의 간절한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규종에 대한 정민의 마음이 더욱 더 깊어가고 있었고 그와 비례하여 규종이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건 하루하루 더 심해져만 갔다. 규종은 조직의 생활이 뭐가 그렇게 불만인건지 이탈 하는 게 다반사였고 정민은 그런 규종을 일일히 쫓아다니며 그가 일으킨 사고에 대해 뒷처리를 다 해주는 게 일이였다.
"규종아. 너 왜 이래,요새? 보스가 너 한 번만 더 이러다 잡히면 진짜 가만히 안 둔댔어."
"......박정민."
"응?"
"....너 나 아직 사랑해?"
"그야...당연하지."
정민이 조심스레 고개를 떨구며 긍정의 대답을 했다. 그런 정민을 바라보던 규종의 눈빛이 순간 빛났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은 뒤 정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민이 제 어깨에 손을 얹은 규종 때문에 고개를 들어올리고, 그러자마자 규종이 정민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갖다댔다.
정민이 눈을 크게 뜨며 깜빡였고, 규종은 그런 정민의 뒷통수를 잡고선 그에게 바짝 밀착했다.
규종이 한 손으로 제 허리를 휘감자 얼굴이 새빨개져선 홍당무가 되어가던 정민이 그제서야 눈을 살짝 감았고 그의 아찔한 키스에 정신을 빼앗겼다.
한참이나 정민의 입 안을 헤매던 규종이 입술을 잠시 떼어다놓으며 정민을 보고 말했다.
"...나도 사랑해, 우리 같이 살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였지만 규종은 정민에게 했던 말은 사실이 아니였다. 정민과 함께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집이 아닌 밖으로 나돌았고 술과 여자 도박에 빠져사는 하루가 허다했다. 정민은 그러면서도 규종을 포기하지 못했고 규종에 대한 현중의 불만은 날로날로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것은 규종에게 절대 불리한 상황이 아니였다. 규종이 극도로 원하고 있었던 상황.
이미 계산적으로 현중이 자신에게 질리도록, 정민이 자신을 더 사랑하도록 만들어놓은 트릭이였다. 그는 조직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조직에서 빠져나가길 원했지만, 이 세계가 그런 세계인지라 한번 발을 들여다놓으면 다시 나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는 그래서 현중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고 있는 정민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였다.
"....나가고 싶어요."
"그래서 그딴 짓 벌이고 다녔냐?"
"...할 말 없습니다."
무릎을 꿇고 현중 앞에 앉은 규종이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민은 그런 현중의 옆에 서서 눈가가 젖은 채로 규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중이 잔뜩 열을 받아서는 규종의 가슴팍을 발로 차려고 하는 순간이였다.
"보스!!!....."
정민이 필사적으로 현중을 잡았다. 당황한 현중이 정민을 바라보고, 규종이 정민을 올려다보았다. 정민이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규종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한번만 부탁할게요. 저 봐서...그냥 내보내주세요."
"......"
"이제 다신 여기에 얼씬 거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약속하고..다신 보스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그냥 내보내주세요..."
"......"
"제발요,보스..제가 부탁드릴게요.."
정민을 내려다보던 현중은 분이 가시지 않지만 정민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건지 발을 거두며 욕을 내뱉았다. 현중이 다시 의자에 앉으며 평정을 찾으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다. 너 나가게 해줄게. 그대신...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마."
"....네,보스."
규종이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규종은 현중의 조직에서 나가게 되었고, 규종이 짐을 가지고 나가려는 그 순간까지도 정민은 규종의 손에 꽤 많은 돈이 담긴 통장을 쥐어주었다. 어디가서 굶고 살지 말라는 듯 걱정 어린 시선으로 규종을 바라보고, 규종은 그런 정민에게 예의상 고맙다는 말대답을 해주었다.
"저기..규종아.."
"왜? 나 가봐야 되니깐 빨리 말해."
"보스 앞엔 나타나면 안 되니까...보스 앞에 나타나는 건 조심하고..이 집에 한 번씩은 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도 하고..알았지?"
"글쎄, 시간이 닿을려나 모르겠다."
"그래, 기다릴게."
규종의 차가운 말투를 알고 있는 정민이였지만 그는 가장 밝은 웃음으로 그를 배웅했다. 이게 그가 원했던 것이였으니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만 옆에 있어주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정민이였기에 그는 마지막까지도 그를 위했다.
물론 규종은 정민이 그걸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 따위는 알리가 없었고, 그렇게 정민을 두고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갔다.
.
그렇게 시간은 몇 년이 흘렀고, 서로가 서로를 잊어 가고 있을 즈음이였다.
해외에 있으면서 여러가지 잡다한 일을 해대던 규종은 한국에 있는 한 거대 조직 두목의 뒤를 캐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그가 부른 큰 금액에 규종은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승낙을 했고, 당시 해외를 누비며 활동 중이던 김회장이라는 사람의 뒤를 밟게 되었다.
하지만 그를 너무 얕게 본 데다가 원래 아무리 큰 돈이 걸려 있어도 건성건성 일을 처리하던 성격의 규종은 그 일로 그들의 조직에 의해 잡혀버렸고 정보를 유출시켰다는 항목으로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돈 얼마 받았어?"
"4천."
"와- 미행하는 것 치고 4천이면 많이도 받았네. 그래도 니 목숨이 4천이랑 상응하는 건 아닐텐데 말이지..억울하지 않나? 4천만원 받고 목숨 버리기. 쓰지도 못했을텐데 말이야."
"...억울해 죽을 것 같네요."
"근데 어쩌겠어. 발을 잘못 들였는데.."
"....."
"뭐, 마지막으로 보고싶은 사람 없어? 아직 젊은 놈인데- 애인도 없어?마지막 전화 정도는 하게 해주지."
김회장은 늘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 쥘 수 있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규종에게 내밀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김회장의 앞에 앉아 있던 규종은 비록 밑바닥 인생이였지만 자신이 당당하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제서야 찬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
규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상황에서 떠오른 건 그토록 꼬시고 싶어 하던 바의 도도한 바텐더 아가씨도 아니였고, 까페의 순진한 아르바이트 여대생도 아니였고, 나이트 클럽을 경영하는 관능적인 누님도 아니였다.
오로지 박정민. 그 하나였다.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잊고 있었던 정민의 웃는 모습이 머릿 속에 떠오르자, 정말 그 말고는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위해 해줬던 그 많은 희생들, 아무런 보답 없이 베풀어주던 그 사랑이 떠오르자 규종은 갑자기 미치도록 정민이 보고 싶었다. 왜 그 사랑을 그제서야 알지 못했는지 자신이 한심스러웠지만, 이제와서 그런 후회는 전혀 쓸모 없는 것들이였다.
길을 잘못 들어도 한참이나 잘못 들어와버렸기 때문에. 몇 분 후면 자신은 이들에게 죽음을 당한 뒤 싸늘한 외국 땅에서 시체가 되어 묻히고 있을 게 뻔했다.
"뭐 애인도 없나보군. 어유, 한심한 인생이네. 넌 그냥 빨리 죽는 게 낫겠다."
".....있거든여?"
"오- 그래?"
"네, 웃으면 그냥 100m 이내는 다 쓰러지고 허리는 졸라 얇고 목소리는 완전 섹시하고 머리도 진짜 똑똑해. 근데 제일 좋은 건 진짜 착해."
"전화통화 할래? 마지막일텐데-"
"........."
규종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고싶었다. 당장 정민에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 말고도 나머지 하고싶은 세 글자를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현중의 조직에서 벗어나올 때 그 흔적을 버리려 모든 것을 버렸다. 정민의 번호까지도. 그가 정민의 번호를 기억할리가 만무했다.
"번호 몰라요."
"참나..."
김회장은 규종을 한심스럽다는 듯 내려다보며 담배를 입에 물더니 규종에게 말했다.
"그래, 죽을 때도 그 애인 생각하면서 죽어라. 그럼 덜 아플거 아니냐?"
"저기, 잠깐만. 나 그 애한테 용서받아야 될 게 많아서 그런데..시간 좀 줘요."
"너 같이 뻔뻔한 놈은 처음 봤다. 너 이제 곧 죽어, 임마."
"나 걔한테 아직 용서도 못 구했고, 사랑한단 말도 못 해줬어요. 그니깐 시간 좀 줘요."
"난 그렇게 머리가 쪼달리는 놈이 아니야."
김회장은 여유롭게 웃으며 규종을 바라봤다. 그리곤 자신의 조직들에게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듯 손을 들며 규종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근데...너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었지?"
"꿈에서 보셨겠죠."
"한국에 있을 때.....술 집....어디더라.."
"아..."
두 사람이 동시에 무언가가 떠오른 듯 서로를 쳐다봤다.
"너...김현중 밑에 있던 놈.."
"술집에서...봤었었네요."
"너 그 조직에서 나왔냐?"
"....."
"으음~"
김회장은 갑자기 무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조직원들에게 규종을 일으키라고 명령했다. 당황한 규종이 일어나면서도 뭔가 의심쩍다는 표정으로 김회장을 바라봤다.
"살려줄 기회를 주지."
".....뭐? 구라치지마요. "
"그대신..."
"......."
"나랑 손을 잡는거야. 난 김현중이 요즘 몹시 신경쓰여서 미칠 거 같거든."
김회장의 말에 규종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한참을 생각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규종이 한참동안 대답이 없자 김회장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살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니 도움이 없어도 그 녀석 골로 보내는 건 쉬우니까."
"자...잠깐만요.."
규종이 살짝 고개를 수그리며 조용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박정민....나 죽기 전에 너한테 고백은 하고 죽어야겠다."
사랑임을 알지 못했던 과거의 일.
Thing of Past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