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살고싶은 그 남자의 메세지.
식물인간, 그리고 7일...
너의 그 눈에 내 눈을 맞추고 싶다.
너의 그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추고 싶다.
너의 그 손을 내 손으로 잡고 싶다.
너의 그 어깨에 내 어깨를 기대고 싶다.
...............미칠듯이 내가 싫다.
첫째날
김규종.
이 세상에 태어나 23년을 살아왔다.
2월 24일생에 전형적인 A형.
단순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말들...
하지만 이보다 더 단순하게 '나'란 존재를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하는 한 마디.
전신마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젊은 남자.
아마도 이 한 문장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23년, 별 다른 목적없이 살아 온 걸 이제와서 후회하고 있다.
몸이 다 낳는다면...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해 본 뒤에 꼭
지금 겪고 느끼고 있는 이 이야기들을 글로 써내려 가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감'에 대한 '건강'함에 대한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그게 크고도 작은 내 바램이다.
어쨌든 아침부터 쓸데없는 잡담은 그만두고,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시계를 보려고 몸을 돌릴 수 없으니 몇 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수개월간 몸에 베인 감각으로 지금이 9시 정도라는 건 알고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늦게 일어났다.
요즘 들어 점점 잠이 많아지는 것 같다. 좋은 증상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건 정민이를 찾는 일.
역시나 일찍 일어나서 하룻밤사이의 병실을 체크하고 있다.
매일 해도 온도나 습기는 그대로인데 그걸 체크하는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한참이나 병실을 돌아다니다가 내 침대의 옆에 앉는 정민이.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주려고 그럴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규종아,잘 잤어? 설마 이 시간에..아직 자고 있지는 않겠지?"
잘 일어났어.너도 잘 잤어?
"..나는 어제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목이 되게 뻐근하다.
무슨 꿈 꿨는지 얘기해줄게~ 흐흐, 너랑 나랑.. 놀이공원 갔었던 거 기억나지."
기억나지.
"그 때 내가 자이로드롭 타쟀는데 니가 무서운 거 싫다고 계속 회전목마 타자고 했었잖아.
근데 이번 꿈에선 니가 나보고 자이로드롭을 타재는거야. 내가 회전목마를 타자고 하고...
그래서 막 우리가 그런 걸로 싸우더라고.흐흐, 웃기지? 애들 같아."
흐흐, 그게 뭐야.
".....니가 회전목마 타자고 했을 때 회전목마 탈 걸."
....니가 자이로드롭 타자고 했을 때 타줄 걸.
"....이게 후회로 남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나도 후회다. 니가 그토록 타고 싶어했는데...
그깟 놀이기구 너랑 있으면 무섭지도 않았을텐데.
"뭐..다 낳고 다시 타러 가면 되니까!!! 흐흐."
응. 다 나아야지...
"그니까 우리 힘내자!! 김규종! 화이팅!!!!"
박정민, 너도 화이팅.
정민이는 내 손을 한참이나 만지작 거리다가 살짝 웃어보이고는 일어섰다.
언제봐도 웃는 게 이쁘단 말야.
많은 사람들한테 자랑 하고 싶다. 웃는게 이렇게 이쁜 정민이가 내 애인이라고.
꼭 일어나고 나면 그렇게 해야지.
얼마가지 않아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몇몇의 무리가 들어왔다.
아아,짜증나는 저 의사의 얼굴을 또 봐야 하는 건가..
"안녕하세요."
"아..오셨어요?"
왜 정민이는 저 의사한테 웃으면서 잘 해주는거야. 얄밉게.
자세한 건 모르지만 잘생겨먹은 얼굴에 흰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이
조금 멋있어 보이긴 한다... 그래서 더 얄미운 거고.
"어제랑 똑같네요."
"아,아니에요~ 어제보다 기분은 더 좋아보여요!"
"...푸,알았어요."
그렇게 '김현중'이라고 쓰여진 명찰을 들고는 나를 이리저리 살핀다.
맥박이라던지 반응이라던지... 매일 재 봐도 똑같을 걸 왜 저리 재러 오는지..
귀찮을 따름이지만 뭐..'그만 하라'고 말 할 처지는 못 되기에 가만히 있을 뿐.
"....가 볼게요."
"안녕히 가세요~"
정민이가 활짝 웃어보이며 인사를 하자 의사와 간호사 몇몇은 병실에서 나갔다.
정민이가 많이 안 웃어줬으면 좋겠는데...
"규종아. 금방 들어왔다 간 의사 잘 생겼지?"
.....이런,개십샹.
"그저께 주치의가 저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하길래
젊은 사람이라서 믿음이 안 갔는데 어제 얘기해보니까 괜찮더라구.
점점 볼 수록 믿음이 가는 것 같아."
믿음? 개나 줘버려.
"저 의사가 너 많이 도와줄테니까 규종이 너도 힘내서~ 일어나야지.얼른."
...그래, 일어나면 저 의사부터 처리해야겠다.
그리고는 정민이가 내 손에 꽉지를 끼며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에휴, 아침부터 그런 눈빛으로 보면 어쩌잔거야. 확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은 하늘 같다.
"....규종아."
.........응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니가 어서 일어날 거라고 믿어."
.....나도 내가 일어날거라고 믿어.
"....음..니가 일어나면 뭐부터 할까?"
음...
"아까 말했던 거, 놀이공원도 다시 가보고...우리 산책하던 한강도 가고,
또..우리 잘 가던 곱창집 있잖아. 거기도 다시 가보고 싶어. 음...영화도 보러 가고 싶고...
저번에 부산에 여행갔었던 거 있잖아, 그것도 다시 하고 싶어.."
...나도 다 하고 싶어.
"...하지만 무엇보다...흐흐, 비밀인데....
그냥 바로 집에가서 뜨겁게 밤이나 불태우고 싶다! 변태인가?"
...하여튼 은근히 밝히는 놈이라니까. 내가 깨어나기만 해봐. 넌 죽었어...흐흐.
"....니가 먼저 내 손을 잡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니 손을 먼저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
.
.
또 또 눈물.
매일 아침은 이래서 슬프다. 오늘도 역시 울어버리고 마는 정민이.
왜 그렇게 매일 아깝게 눈물을 흘리는 거야..
이젠 안 울때도 된 것 같은데.
......하여튼 너는...내 간병인이 아니라 니 간병인이 있어야 할 노릇이야.
"..매일 니 앞에서 이렇게 울어서 미안해."
그래,이젠 울지마.
".......미안해..."
정민이가 고개를 수그린 채 울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있는 일..하지만..최근들어서 그 횟수가 더 잦아 지고 있다.
...몸이 더 나빠진건가.... 요즘들어서 우는 얼굴을 자주본다.
웃는 얼굴만 보고 싶은데...
"......흐으으..흐으.."
정민이가 나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건 웬지 모르게 좋았다, 사랑받고 있는 거 같으니까.
하지만..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니 눈물을 닦아 줄 수가 없으니까.
.
잠도 잦아지고 머리에 가끔씩 통증도 느껴진다.
무슨 통증인지는 알 수가 없다.
......뭐, 마음은 한 껏 짓고 있다만..얼굴 근육이 제대로 전달을 못 받으니까.
며칠 전에는 오른쪽의 발가락 감각도 살아있었는데 이젠 신경이 전달을 못 받는 것 같다.
겨우 발가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게 있어선
내가 힘을 주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자랑스러운' 거였는데..
몇 개월 전만해도 하루에 잠깐씩 정민이와의 대화도 가능 했었다.
하지만 이젠 폐에 힘이 없어서 그런지 숨부터 가빠온다.
내가 힘들어한다는 걸 알아서그런지 정민이도 더 이상 내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고...
'정신'만 매끈할 뿐이지,
진짜 그야말로....눈과 귀만 열려있을 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
생각할 수 있는 '뇌'는 멀쩡하게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멋대로 '식물인간'이라고 단정짓기는 했다만,
뭐...솔직히 식물인간과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금 내 인생이 비참해지지만.
체념 해야 할 뿐이다.
시궁창에서 살아나가려고 발버둥 쳐봤자 더 더러워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고.
그나저나 지금은 정민이가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있다.
항상 3시가 넘어서야 겨우... 그것도 내 옆에서 밥 한 번 먹고 내 얼굴 봐가며
먹어대서 너무 미안하다. 맛있는 것 좀 사 먹지..매일 먹는게 거기서 거기.
내가 한 볶음밥이 기름떡칠 되어 있어도 되게 잘 먹었었는데..
에휴, 과거의 이야기를 해 봐야 슬픈 건 나뿐이니까 그만하련다.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것....이제는 체념도 되어 가고 있다.
......내 정신만이라도 놓지 않게 해 준 하늘에 감사해.
하지만 하늘이 날 일어날 수 있게 해준다면 더 더 더 감사할텐데.
"규종아."
밥을 먹다 말고 나를 부르는 정민이. 또 무슨 말이 하고싶은 걸까.
"...이 분식집 이제 못 시켜 먹겠다."
왜? 지금까지 잘 먹어 왔을텐데.
"국에서...파리 나왔어."
이런...그딴 분식집....요리도 잘 못하는 것 같더니.
"..아,씨발....짜증나...."
푸하, 정민이가 욕하는 거 되게 오랜만에 듣는다. 재밌어.
"규종아, 그럼 나 이제 어느 분식집에서 시켜먹지~? 그래도 싸고 좋았지만,
파리가 든 음식따위는 먹고 싶지 않아. 으음...어디가 좋을까. 어디가."
좀 비싼 곳이 좋지 않겠어?
정민이가 옆에서 머리를 굴리며 생각을 해댈 찰나에 병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찾아 온 걸까.
"오랜만이야. 밥 먹고 있었어?"
"아니,뭐.. 웬 일이야?"
"웬일이긴!"
"나도 왔어!!!! 꺄오- 박정민 안뇽안뇽!!!"
"아휴,시끄러워."
...이 목소리들로 보아 영생이 형이랑 형준이. 병실이 또 시끄러워 지겠군.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거라 기분은 좋다.
자식들, 한동안 어디 쳐박혀있었는지....
"정민이,좀 말랐다?..제대로 먹으라니까."
"돼지가 앙상해졌네!!"
"치,뭐래.."
형준이가 정민이를 놀리다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얼굴근육을 움직여가며 나를 바라본다.
김형준새끼, 여자의 향수냄새가 가득하다...
"...말 하려면 폐에 힘이 있어야 되는데..힘이 없어서 말은 못 해."
"더 나빠진거야?"
"아냐,아냐...그냥..뭐.."
"그럼 뭐.......아무거나 뭐 달라 진 거 없어?"
"그게 결과가 바로 나타나냐..무슨..."
"....5개월 넘었으면 나타날 때 됐지,뭐."
"흐흐..뭐..이제 곧 나타나겠지. 좋게 생각해."
"........"
내가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형준이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핏, 김형준. 너 따위한테 그런 슬픈 표정 안 어울리는데....
그나저나.. 별다른 변화가 없구나, 내 몸에.
난 나름대로 많은 게 변했다고 느꼈는데..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만져보면 반응은 해?"
얼마 가지 않아 영생이 형이 나에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곤 내 얼굴 앞에 제 얼굴을 빤히 들이미는 영생이 형.
오랜만이다,허영생...입술에 피어싱 했네. 얼굴 가만히 못 두는 건 여전해.
반갑게 속으로 인사를 한 나와 달리 나를 보며 한참이나
답답한 표정을 하던 영생이 형이 내 얼굴에 손을 갖다대고는 볼을 꼬집었다.
정민이가 놀란 눈으로 영생이 형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뭐하는거야!"
".....반응 있나 알아보게."
"세게 꼬집지 말고 놔!"
"야,야. 세게 안 꼬집었어~ 치사하게..."
..허영생.얄미운 놈. 분명 세게 힘을 준 거지..
흐흐, 그래도 오랜만에 모이니까 기분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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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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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직 시간은 점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머리가 띵해오기 시작한다.
잠이 이렇게나 많으면 24시간 하루를 다 깨어 있을 수 없는데...
형준이가 웃는 목소리와 영생이 형이 정민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루가 이렇게 짧아지면 곤란한데...
......잠 들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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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