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살고싶은 그 남자의 메세지.
식물인간, 그리고 7일...
너의 그 눈에 내 눈을 맞추고 싶다.
너의 그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추고 싶다.
너의 그 손을 내 손으로 잡고 싶다.
너의 그 어깨에 내 어깨를 기대고 싶다.
...............미칠듯이 내가 싫다.
다섯째날
따스한 바람이 병실 안에 불어오는 걸 느낀다.
왜냐하면 내 옆에 있는 두루마기 휴지가 살짝 펄럭이면서 내 얼굴을 괴롭히고 있으니까.
왠지 그 느낌이 좋다. 휴지가 의외로 부드럽구나.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난 감이 있어서 기분이 좋다.
물론 어제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오늘이 좋으니까 상관은 없다.
휴우, 원하는 게 있다면 지금 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분 좋은 오늘로 남아주길.
"......"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오늘은 정민이가...잠 들어 있다!
하하. 오늘은 웬지 느낌이 좋다. 정민이가 먼저 잠들어 있다니...
근데 되게 불편하게 잠이 들어서 안쓰러워 보인다.
"....으음.."
풉~ 잠꼬대 하는 것도 귀엽다, 박정민.
무슨 꿈을 꾸는 건지 인상을 제대로 써서는...
"...규종아...."
와, 되게 감동이다. 잠 자면서도 내 생각 하는 거야?
"...으음....규종....아..."
그래, 니가 그토록 부르는 김규종.다 듣고 있다. 무슨 말을 하려고...풉.
".....미안..."
자식...싱겁다.
....니가 뭐가 미안할 게 있다고.
설령 니가 나에게 진짜 미안할 짓을 했다고 해도 넌걸...
다른 누구도 아닌 박정민인걸.
박정민, 김규종 사이에 '미안'이란 말 오고가는 거 싫어.
...그니까 미안해하지마.
미안하다는 말 대신 난 사랑한다는 말만 듣고 싶으니까.
.
불편한 자세로 깊게도 잠이 들었던 정민이가 어느새 일어나서 내 얼굴을 살피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다른 날보다 훨씬 기분이 좋은데 티가 나려나?
"규종아, 잘 잤어? 나 침대에서 안 자고 여기서 잤나봐. 어휴..정신머리 하고는."
그래,박정민 니 건망증이 하루이틀 일이냐.
"....자자,김규종!! 오늘 하루도 열심히 병과 싸워 이기는 거다! 화이팅!"
정민이 너도 약해지지말고 화이팅.
그리고 여느때와 같이 내 한쪽 손을 꽈악 잡고 기도를 시작하는 정민이.
그 기도하는 모습이 꽤나 진지해서 나도 하늘 어딘가에 있을 하느님을 향해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정민이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슬픔 따위는 모르고 살게 해달라고.
그런데 문득 진심을 다해 기도를 하다가 드는 생각.
그런데 이 하느님이란 작자....
소원을 들어주는 기준은 뭐야?
내가 하루가 멀다하고 이렇게 소원을 빌어대면 조금이라도 반응은 있어야 할 거 아냐.
나 진짜 죽고 나서 하늘 가면...
당신은 소의사보다 더 먼저 어퍼컷 작렬이야.
그렇게 아무 반응 없는 하느님을 속으로 욕한 뒤 정민이를 바라봤다.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는 정민이.
"네..아침 정식 하나만 갖다주세요. 705호 실이요."
원래 아침은....안 먹었었는데...
....이제는 아침도 먹는 구나.
뭐..니가 먹고 싶어서 먹는 거고 몸에도 나쁘지는 않으니 상관은 없지만
갑자기 아침을 먹게 된 계기가 그 남자 때문일까...?
그래, 이제 이런 질투는 하지말자.
정민이가 제 몸 챙긴다는 데 뭐...
.
"히익...아프가니스탄에서 또 폭탄테러 일어나서 4명 죽고 48명이 다쳤대."
...어휴,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폭탄 터뜨려대는 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야..
지 가족들도 없나? 아니, 가족이 있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잖아.
세상이 싫으면 혼자 죽던지 왜 사람들을 죽이고 지랄이야...
"...애들도 많이 죽었대. 아후...불쌍하다."
...이 씨버럴 하느님... 요즘 정말 할 일이 그렇게 바쁜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가고 있는데 살려야 할 거 아냐.
"한국은 이런 상태 아니라서 진짜 다행이다. 그렇지?"
절대 동감이다. 대한민국. 참으로 살기좋은 나라라는 걸 느껴.
뚜렷한 사계절기후에 큰 지진도 안 일어나고 반도국가....대한민국만세!
그렇게 정민이가 신문을 읽어가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을 무렵,
언제나 이 시간 때면 찾아왔던 소의사가 또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유,정 들겠슈. 소의사. 이젠 아주 반갑구만?
"어,오셨어요?"
"...네.어떤 것 같아요, 오늘은?"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아요?"
역시 정민이, 내 마음을 척척 아는 구나.
"....뭐..그래보이진 않지만 정민씨가 그렇다면 그렇겠죠."
시밤새끼....비꼬는 게 눈에 다 보인다...
"아침은.."
"저 오늘..아침 밥 먹었어요."
"아,진짜에요? 잘 했어요."
그냥 의사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대화일 뿐이다.
이런 거 하나 일일히 질투하면 속만 좁아져.
"아,근데 정민씨, 접수처에서 이달 분 영수증 가져가래요."
"아..그럼..저 잠깐만 갔다 올게요."
다행이네, 이번 달 병원비는 냈구나.
어떻게 냈지..? 영생이나 형준이한테 빌린 건가...
흐음, 그 녀석들도 그리 부유한 녀석들이 못 되는데..
대출이라도 한 건가? 아니면..아직은 통장에 있는 돈으로 낼 수 있는건가?
그나저나 정민이가 소의사를 힐끗 바라보고는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어우.. 소의사랑 나뿐인거야? 이거 괜히 걱정되는데..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을 찰나 갑자기 소의사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놔, 저 자식 나 죽이는 거 아냐?
다가오지마.
다가오지마.
......아씨, 이 새끼 진짜 나 죽이는 거 아니야?!
다가오지..!!!!!!!
".....푸석하네, 맥박도 좀 낮고.."
내 몸에 갖다대던 소의사의 손은 내 이마를 집었다가 손목으로 향했다.
괜히 혼자 오버했네.
그렇게 아무런 말 없이 내 몸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나가는 소의사.
그래도 날 살려주는 마음은 있을 것 같아서 살짝 감동이다.주제에 지도 의사라고...
하지만... 내가 죽어도 박정민은 못 준다, 이 새꺄.
그렇게 한참을 조용하던 병실 안의 분위기에 가만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들리는 목소리.
.
.
.
.
"........답답하죠?"
....뭐야?....
"...답답할 거에요."
답답하기만 할 것 같냐? 미칠 것 같은데.... 그나저나..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너는 지금 안 다쳐서 멀쩡하다고 놀리는 거냐?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 때문에 힘든 걸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건..참 답답할 거에요."
.....그건 알고 있어...충분히 슬프고...
근데..그건 너한테 충고들을 말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래도 당신은 복 받은 거에요."
.......복? 니가 말하는 복이 이 '福' 맞냐??
새해에 어른들한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 때 쓰는 복..?
"...당신이 이렇게 전신마비로 있는 건 당신이 이렇게 누워 있어도
옆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하고 지켜 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난...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건강한 거고."
치,위로라고 하냐. 그걸...하지만 널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니 살짝...쌤통이네.
소의사 당신이 나를 얼마나 좋게 봐 줘도 나한테 당신은 영원히 경계대상 1호야.
.
.
.
.
.
.
"...당신 말인데.."
왜, 뭐가 또... 말 없는 줄 알았는데 소의사 입에 모터달았나.
"....이번 달이 고비일거에요."
...뭐라고...?
"이걸 당신한테 말하는 건... 이제 체념을 하라는 게 아니라...
당신이 죽기 싫으면 죽을 만큼의 노력을 하라는 거에요."
.........야,소의사..
"저 사람도... 당신이 가망이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을 거에요, 내가 얘기했거든요.
하지만..이번 달이 고비라는 말은 못 하겠더라구요...
저 사람이 충격먹어서 쓰러지면 당신 보살 필 사람이 없을 뿐더러...
나도 저 사람 아픈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말 똑바로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어요."
...소의사새끼..너 이거...구라까는 거 아냐?..
"......시간 남은 거...바뀌게 만드는 건 당신이에요.
나도..저 사람 손목 긋고 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치료할게요."
......
"하지만 당신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요."
머리가 띵해져 오는 것 같다..... 접수처에 내려가던 정민이의 모습이 떠올라.
이번 달이 고비이면...젠장...근데 오늘이 몇 일 인지를 모르겠어..
아.. 이번 달이 고비인 것도 억울한데 몇 일이 남은지를 모르는 건 더 억울하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현실적이가 보다.
무엇보다... 하느님한테 감사한다.
...그나마 동아줄이라고 내려 준 게..이 사람인 건가..
...썩은 동아줄이 아니라고 믿어.
그동안 욕하고 시기한 거.... 일어나고 나면 무릎꿇고 정중하게 사과할게.
소의사.......
니가 오늘부로 내 하느님이다.
.
내일부턴 바빠질거다.
무엇이든 시작은 '내일부터'하는 게 버릇이였는데
이번에도 뭐...'내일부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진짜로 열심히 할 마음은 있어.
아침에 일찍 일어났을 때,
원하는 게 있다면 지금 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분 좋은 오늘로 남아주길바란다고 했었는데...
내가 소의사한테 그런 말들을 들었다고 해서, 상심해있거나 체념해 있지는 않다.
난 여전히 기분이 좋고,
난 여전히 의욕이 넘친다.
난 절대로 다가 올 내일이 두렵지 않다.
.
.
.
.
.
.
.
........그냥....
......단지.......
..조금........조금......
.............정민이 손을 잡고 싶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