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살고싶은 그 남자의 메세지.
식물인간, 그리고 7일...
식물인간, 그리고 7일...
또 다른 이야기(Another Story...정민)
목이 터져라 울려대는 핸드폰 알림에 눈을 떴다.
도대체 몇 번 반복을 해 놓은 거야..
".....아흐으,짜증나..."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닫은 뒤 시계를 바라봤다.
6시 50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
한껏 기지개를 편 뒤에 하품을 하고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침대 옆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놓인 액자. 그리고 그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
"....하아..확실히 이 시간에 일어나려니까 많이 힘들다. 어깨가 뻐근해.
어제 뉴스 봤는데..오늘 비 온대. 생각해보니까 나 허리도 좀 아픈 것 같은데..
벌써 몸이 찌뿌둥한게.. 늙었는가보다. 나 아직 스물다섯인데.. 아휴."
알람소리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내 목소리에 일어났는지,
갑자기 내 허리에 떡하니 감겨오는 무거운 팔 하나.
"..엇! 뭐야.."
"아침부터 혼잣말....싸이코냐."
"혼잣말이 아니라 대화 중이거든? 커뮤니케이션 몰라?"
"........나도 줘 봐."
"이상한 말 하려고 그러지."
"아냐.일단 줘 봐."
믿음은 안 가지만 일단 액자를 내밀었다.
"..안녕..휴우...참..당신..
이렇게 하늘에서도 내 연애를 안 도와주니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이제 그만 정민이 나한테 맡기고 떠나요~떠나~"
"시끄러~ 내놔!"
흐흐, 규종아. 안녕. 잘 잤어?
기분 좋은 일요일인데도 이 사람의 알람 때문에 7시에 일어났지 뭐야.
아휴...김현중은 얼마나 잠이 많은지 알람이 아무리 많이 울려대도 일어나지를 않아.
그러니까 자기가 맞춘 알람에 내가 일어나서 깨우는 방법 뿐이지.
규종이 넌 알람이 시작함과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일어났었는데..
진짜 얼마나 안 일어나는지 아침마다 고역이야.
그래도...오늘은 내 목소리에 일찍 깼어. 평소보다 목소리도 작았는데..
아마도 질투가 나서인 가봐.
'김규종'하면 뻑가잖아, 얼마나 너한테 질투를 많이 하는 지 아주..
아휴, 근데 오늘도 삐진 것 같다.
완전 생긴거랑 다르게 소심의 극치라니깐?
"삐졌어?"
"아니.넌 액자랑 대화나 해."
"아아~ 왜 삐지지 말구~ 으응?"
"됐어."
"뭘 그런 거에 질투를 해~"
"넌 안 당해봐서 몰라."
"뭘,뭘!"
"아침마다 다른 남자 사진보면서 배시시 웃어대고,
아침인사는 다른 남자 사진에 먼저 하고...."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해. 쬐끔 미안하네.
확실히 너도 내가 이렇게 한다면 화를 냈겠지?
김현중이 기분나쁜 표정을 하고 앉아 있다가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아휴..삐돌이.삐돌이..
김현중의 손목을 살며시 잡아 방향을 돌렸다.
"왜."
"잘 잤어요~?"
"너 땜에 못 잤어."
"그래도 굿모닝♡"
살짝 손등에 입술을 맞추고 손을 놓아주자
금새 얼굴이 발개져서는 이마를 매만지는 김현중.
...아휴,어쩜 이렇게 천의 얼굴인지.. 규종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흐흐. 뭐 그런 점이 귀여운 거지만.
"......손등키스가 뭐야.."
"..왜, 뭐가 또."
"입술로 해야.."
침대 위에 있던 베개를 들어 얼굴을 향해 휙- 던져버렸다.
그리곤 메롱을 해 보이자 무안한지 뒷 머리를 긁적였다.
"아침은?"
"알아서 해 먹어."
"야..해줘."
"손등에 뽀뽀해줬잖아."
"되게 비싸게 구네."
"비싸니까!"
흐흐, 우린 아침마다 매일 이래.
달콤하지도 않고 냉랭하지도 않고...
어째됐건 이 사람이랑 같이 살게 된 건 한 달 정도 됐는데
아직도 투닥투닥 부딪히는 게 많아.
뭐..제일 많이 부딪히는 일이 너에 관한 일 때문이지만.
하지만.. 억지를 부리면서도 이 남자한테 되게 미안해.
나 같아도 죽은 애인을 2년동안이나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하는 사람이라면
힘들어서라도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내가 너 다 잊을 때 까지 기다려주는 걸 보니 김현중, 이 사람도 꽤 괜찮지?
"전화 왔어."
"내 꺼야?"
"응."
7시에 나한테 전화 올 일이 있었나..?
"여보세요."
-"흐..흐아아...정미나아..정미나.."
"...에휴..또 너냐."
규종이 너도 누군지 바로 눈치챘지?
꼭두 새벽이든 점심이든 밤이든 시간개념없이 전화 해대는 사람.
"그래, 김형준. 이번엔 또 왜?"
-"흐으..영생이 형이 없어어.."
"....왜 어디 갔겠지."
-"...영생이 형 짐도 없어졌단 말야..."
"...뭐..진짜야?"
-"흐아아...형 집 나갔나봐아..흐으..흐으.."
"....니가 어떻게 했길래 영생이 형이 집을 나가."
-"몰라.....흐으으..어...아....형?!"
......뭐야, 얜 또. 영생이 형은 어딜 간 거고.
-"박정민, 나 영생인데...아휴,얘 왜 이래?"
"...뭐야? 어디 갔었어? 형준이가 형 집 나갔다던데?"
-"....쓸데 없는 거 내다 버리고 왔는데 김형준이 지랄하잖아..."
"...뭐?"
형준이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 건지 영생이 형과 통화를 하는데도
핸드폰 너머로 형준이의 절규가 들린다.
-"옷이랑 신발을 그렇게나 많이 버리니까 착각하잖어어!!"
-"아,내 맘이잖아."
-"형 맘만 있어?! 내가 아침에 얼마나 놀랬는데! 또 또 형이 커플티도 버렸잖아!"
-"그거 디자인 마음에 안 들어서 버렸어!"
-"왜! 내가 사준 건데 고맙게 입으면 되 잖아!"
......하지만..얘네보단 우리집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그렇지?
아침마다 매번 저렇게 싸워대서 어쩜 좋냐.
그래도...뭐 그래도 쟤네는 화해를 격하게 하니까.. 하하하...아,괜히 부끄럽네.
어쨌든 얘네들은 동거 시작하면서 더 친해진 건지 더 나빠진 건지
사이를 종잡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둘이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어쨌든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고는 부엌으로 가니
자기 나름대로 맛있는 거 만든다고 서툰 칼질을 하고 있는 김현중.
"뭐 만들어?"
"지금 결정하게."
"결정도 안 하고 양파부터 잘라?"
"자르면서 결정하게."
"...또라이."
"양파는 모든 음식이든 다 넣어도 되니까~"
"아, 그러셔?"
규종아.
오늘은 너에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
이 말을 너에게 하기가 미안하기도 하지만..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인 것 같아서.
'사랑'은 절대 무시하면 안 되는 거라고.. 니가 그랬지?
니가 나 짝사랑 하던 시절에 고백했었던 거 잖아.
내가 2년 간 규종이 너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하는 것도 사랑이겠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나를
아무런 대가없이 기다려준 것도 김현중의 사랑도 ... 사랑이잖아.
더 이상, 이 남자의 사랑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내가 널 완전히 잊지는 못할 거야.
넌 확실히..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남자니까.
하지만... 조금씩 노력하면서 널 잊어 나가려고 해.
그니까 너도 많이 도와줘야 돼.
내가 너보다 김현중을 더 많이 사랑한다고 질투하면 안 된다?
이 남자한테는 비밀이지만
그래도..널 사랑한만큼 이 남자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
하하, 이 얘기 들으면 또 김현중 펄쩍뛸 걸?
그래서 이건.. 영원히 비밀에 붙혀두려구. 너도 비밀로 해 줘야돼?
"내가 양파 자를게."
"싫어."
"왜!"
"칼은 너한테 안 줘."
".....어우, 그게 언제 일인데."
"그래도 안 줘."
아, 바보같은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사실은 너 죽고 나서... 식칼로 손목을 그은 적이 있기는 있어.
진짜로 견딜 수 없었거든.
근데 그 때 이 남자가 달려오더라고.
나도 겁이 많아서 인지 손목을 제대로 긋지도 못했고.
아휴, 근데 그 때 일이 언제일인데 나한테 가위나 칼은 아예 쥐게도 못하게 한다니까?
그래도 그 때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
내가 진짜 손목을 칼로 제대로 그어버렸다면,
지금 이렇게 매일 아침을 너의 사진을 보면서 기분 좋게 시작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야.
그리고 내가 그렇게 손목을 그어서
널 만났다면 너도 날 반가워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씨이. 그럼 내가 뭐 할까?"
"그냥 쉬어."
"왜왜~ 나도 할 수 있어."
"아침은 너랑 그 남자 시간이잖아."
.....그래, 확실히..
어제까지만 해도 아침은 규종이, 너와 나의 시간이였어.
배려해주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지만 되게 씁쓸하기도 해.
나는 절대 '나 같은 건' 받아들이지 못할 텐데.
같이 살면서도 다른 남자를 그리워 하는 나 같은 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텐데.
규종아,
너도 이 남자 믿을 수 있겠지?
너만큼..날 사랑해 줄 수 있겠지?
나..확실히 이 남자 사랑해줘도 되는 거 겠지?
"이제부턴 아냐."
"...뭐?"
"......"
"......"
"이제부턴..김현중이랑 내 시간이야."
내 입술이 기분 좋게 김현중의 입술에 닿자 김현중이 조용히 식칼을 내려놓았다.
.
규종아.
넌 내가 너무 많이 사랑했던 사람.
내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
날 너무 많이 사랑해줬던 사람.
너무 안타깝게 떠나가 버린 사람.
...그리고.. 이제 조금씩 잊어야 하는 사람이야.
니가 원했던 행복도 이런 거라고 믿어.
규종아, 나 지금 충분히 행복하니까 하늘에서 웃으면서 지켜봐 줘야 해.
잊지 않을게, 니가 준 사랑.
그 사랑만큼 이 남자한테 베풀면서 살아갈게.
니가 다 경험했지 못했던 행복한 인생.
내가 2배로 행복하게 살면서 다 경험해볼게.
이번 생은 이 남자를 선택한다고 해도....우리 다음 생에선 다시 만나자.
내가 꼭 빌테니까 다음 생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그 땐... 나보다 더 오래 살아줘야 해.
내가 죽을 때...니가 내 손을 꼭 잡고..사랑한다고 말해 줘야 돼.
해 줄 수 있지?
우리...다시 만나자.
꼭 다시 만나자.
그 땐..
니가 먼저 내 손을 잡아 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