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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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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ule 12
└→ 지피지기(知彼知己)면...
아침 해가 벌써 중천에 떠 있었다.
어제 별로 늦게 들어오지도 않았고 힘겨운 일도 한 게 아니였는데
일어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형준이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다.
"......."
어제 정민이 집까지 데려다줄 때까지도 아무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섭섭할 따름이였다.
형준이 갑자기 생각난 듯 베개 옆의 핸드폰을 들었다.
"....."
전화번호부에 들어간 형준이 핸드폰을 빤히 바라봤다.
"...김현중...."
솔직히 아무런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어제 분명히 '김현중'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바뀌었던 정민의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정민아,정민아,박정민아..너 진짜..뭐하고 다녀...에휴..."
형준이 다운된 기분을 업시키려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넌..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라고 생각해..?
-니가 알면 안 돼..그냥 그렇게만 알아주라.
하지만 요 근래만해도 정민의 달라져버린 태도나 의미심장한 말들,
형준의 작은 행동에 당황하고 놀랬던 표정들이 떠올려졌다.
"......"
형준이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궁금했다.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무슨 남자인지 자신이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한참을 핸드폰을 바라보던 형준이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뒤돌아섰다.
그렇게 방 문을 열려던 찰나 형준이 인상을 가득 찌푸리며 다시 뒤돌았다.
"..지피지기면...백전백승.."
형준이 결국 핸드폰을 들고 폴더를 열었다.
떨리는 손으로 김현중을 검색하고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셋....둘........"
형준이 긴장된다는 듯 침을 꼴깍 삼키고는 이내 용기를 내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하나!!"
'하나'를 말 함과 동시에 형준이 통화버튼을 세게 눌렀다.
얼마 가지 않아 핸드폰에선 신호음이 들렸다. 형준의 입이 바짝 마르고 있었다.
"........"
형준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지 신호음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여보세요."
"!!!!!!"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한 외간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형준이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렇게 숨졸이고 전화에 집중한 건 정말 처음이였다.
"으아..바보....."
형준이 끊긴 전화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
그 때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던 형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형준이 설마설마 하는 눈으로 발신자를 확인했다.
방금 형준이 전화를 걸었던 그 번호, 김현중의 번호였다.
형준이 현중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받아야 할까,말아야 할까 고민을 하며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이내
무언가 다부진 표정을 한 뒤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
-"......."
".....여보..세요."
-"누구."
"......."
당당하고 거친 말투.
흡사 아까 정민에게 말을 걸었던 약혼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형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김..현중씨 맞으세요..?"
-"그런데요."
".....제가 누군지는..저기....설명해도 모르실거구요.."
-"......"
"..저기..궁금한 게...있어서 그런데..."
-"뭔데요."
"....박정민...아세요?"
-"........"
핸드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형준의 입술이 바짝 마르고 있었다.
"...아세요...?"
-"뭐..그런데요."
"....아시는구나.아..전화한 건 다름이 아니라.."
-"......."
"물어볼 게 있어요....그게 뭐냐면..저..."
-"...뭐가 궁금한 건지.....알겠는데...일단 만나죠."
"에..네?"
"전화로 말 할 이야기는 아니니까. 무엇보다..그 쪽이 궁금하기도 하고."
전화의 주도권이 현중에게 뺏긴 걸 느끼며 형준이 조용히 승낙을 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밀려오는 두려움과 걱정에 형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
형준이 거울 앞에 서서 추워보이는 날씨를 걱정하며 털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까지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멀어 보이는 건지,
형준이 계속해서 마르는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단순하게 '박정민을 아냐'라고만 물어봤고,
무슨 사이인지만 물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만나자는 남자의 당돌한 발언에
바보같이 알았다고 해버린 게 이제와서 후회가 되는 중이였다.
"다 왔어요."
"...아..네."
형준이 택시 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렸다.
형준에게 있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게 왜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는 건지 몰랐다.
조금 일찍 도착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까페 앞에 서서 한숨을 내쉰 뒤
용기를 내어 까페 안으로 들어갔다.
"......"
아직 도착을 했을 거라 생각치 않은 형준이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서 핫초코를 주문시켰다.
"......"
형준이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하며 입맛을 다셨다.
1분 1초가 흐르는 게 너무 늦게만 느껴졌다.
'...무슨 말 부터 해야하지..
단도직입적으로..정민이랑 무슨 사이인지 물어볼까...
혹시나 그냥 정민이랑 친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아...아,김형준.김형준...정신차리자.'
그렇게 자리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던 형준이 마침 열리는 까페의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흐으,그랬어.우리 자기?"
"으응!"
웬 닭살커플이 들어오는 걸 보며 형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휴우."
형준이 시계를 보자 만나기로 한 시간이 1~2분 지나 있었다.
손가락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출입구를 바라봤다.
".....우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까페 앞에 큰 차를 대더니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엄청난 외모의 소유자가 까페의 안으로 들어왔다.
형준이 그 남자를 보는 순간 그 남자의 엄청난 외모에 놀라며 속으로 감탄을 해냈다.
'..히익..잘생겼다.'
남자는 까페 안으로 들어와 한동안 두리번 거리더니 자리가 비어있는 형준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형준은 그 남자를 계속 힐끗힐끗 보며 어떻게 남자가 저렇게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출입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5분이 지나, 10분이 지나....
시간이 가고 가도 전화를 했던 남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형준이 식어버린 핫초코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테이블에 턱을 굈다.
"..뭐야..왜 안 와.."
그 때 조용한 까페 안, 형준의 벨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형준이 뻘쭘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와요?"
"아니, 저..와 있는데..안..오세요?"
-"나도 와있.."
'...목소리가...옆에서 들린..'
형준이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 옆을 바라봤다.
동시에 옆에 있던 남자가 핸드폰을 조용히 내려놓더니 형준을 바라봤다.
당황스런 '적과의 대면'이었다.
.
"........."
"........."
둘 다 테이블을 합친 뒤에도 잠시동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현중은 간간히 블랙커피를 마셔가며 떨고있는 형준을 찬찬히 살펴봤고,
형준은 도저히 아무런 말도 할 용기가 없는지 시선을 내리깔고 커플링만 만지작 거렸다.
".....물어볼게 있다고 했지?"
정적을 깬 현중이 블랙커피를 내려놓고 거만한 표정으로 형준을 바라봤다.
그런 현중의 강력한 포스에 밀린 형준이 주춤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기...."
"........."
"그니까요..."
"........."
"그게..저.."
"...후아."
현중의 한숨에 순간 형준이 움찔하며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거,참. 답답하네."
"...아,알았어요..물어볼게요."
형준이 조용히 시선을 들어 현중을 응시했다.
'지지 말자. 내가 여기서 이 남자한테 꿀릴 이유가 없잖아.
그래, 저 남자가 포쓰가 좀 세기는 해도....뭐...'
형준이 약간 주저주저하며 용기를 내 말을 꺼냈다.
"....정민이랑...무슨 관계에요...?"
용기를 내서 겨우 말한 형준의 물음에 현중이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아무 관계도 아닌데."
".......에.......뭐요?"
"사귀고 있는 거 물어보는 거 아냐."
"....네..."
"안 사겨."
오버까지 합쳐서 당당해보이는 말투에 형준이 당황한 듯 입을 다셨다.
'..역시..착각이였나...하긴 이 남자는 정민이 스타일이랑은 너무 거리가 먼데다가...
정민이가 이런 남자를 꼬셨을리가 없어..'
"...에..그...하하..죄송해요.제가 실.."
"그런데.."
"....네?"
그런데라는 말에 형준이가 큰 눈을 뜨고 현중을 바라봤다.
그런 형준을 보며 현중이 이내 무표정에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걔가 너같은 취향일 줄은 몰랐네."
".....네?"
"너 같은 애로 만족할까?"
"........"
현중의 말에 형준이 당황한 듯 눈을 꿈뻑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저기요...정민..이는 만족하려고 나랑 만나려는 거 아닌데요.."
"...그럼?"
"사랑해서...만나는 건데요."
하지만 형준이 약간은 자신이 없는 듯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런 형준을 보며 현중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사랑?...박정민이 널 진짜 사랑했다면 나한테 눈길 주진 않았겠지."
"...눈길이라뇨..?"
현중의 말에 형준의 눈이 커졌다.
"....감정이 오고간 만남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뭐,이렇게 된 이상 다 말하지.
잠시 만났던 건 맞아. 그러다가 너한테 미안하다는 이유로 헤어졌고."
"...언제부터요?"
"배신감 드나?"
형준이 인상을 가득 찌푸리고 현중을 째려봤다.
그런 형준의 눈빛에 현중은 아무 흔들림 없이 형준을 바라봤다.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초기에 애인 간수를 잘했어야지."
"...이봐요."
"달리 바람 핀 이유가 있겠어? 다...인과관계잖아.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법."
형준이 눈썹을 찌푸렸다.
현중의 거만한 표정이, 뻔뻔한 표정이 자신을 화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형준에게 있어서 몰래 바람을 폈다는 정민 따위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제 앞에 있는 이 남자가 무척이나 치가 떨릴 뿐.
"..허,참나......그냥 일어날게요."
"왜? 할 얘기가 많지 않나?"
"그 쪽이랑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할 이유도 없고!!
그 쪽도 나 그리 달갑지는 않을테니....한 마디만 할게요."
참았다는 듯 형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큰 목소리로 현중에게 말했다.
"헤어졌다니 됐지만, 혹시라도.. 정민이랑...다신 만나지 마요!!!!"
형준이 현중의 앞에 놓여진 블랙커피를 들고 자신이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입가를 슥 닦은 뒤 한 껏 째려보며 일어섰다.
"계산은 그 쪽이 하세요!! 돈 많아 보이니까!!"
형준이 투덜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까페에서 나갔다.
그런 형준의 뒷모습을 현중이 지그시 바라봤다.
"...풉...저런 애랑 진짜 만났단 말이야..?"
그 때였다.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나갔던 형준이 다시 까페 쪽으로 뒤돌아 오는 게 보였다.
그런 형준을 보며 현중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다가 이내 형준을 보고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까페의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형준은
까페 앞에 주차되어 있는 현중의 차 앞에 서서 열쇠를 들고 히죽 웃고 있었다.
현중은 제 머릿속을 스쳐가는 '유치한 복수'를 떠올리며 형준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형준이 현중의 차 운전석 옆의 문을 열쇠로 짧고 굵게 휙- 그었다.
그리곤 기스가 난 문을 자랑스레 쳐다보더니 이내 현중과 눈을 마주치며
손가락을 높이 들어 보였다.
형준의 세번째손가락이 하늘로 높이 향해 있었다.
"..저..미친..!!"
그런 형준을 보며 현중이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서려 할 때였다.
"......."
손가락은 여전히 'fuck you'를 한 채로 울음을 참고 울먹이는 형준을 보고선
그 슬픈 표정을 보고선 현중이 힘없이 자리에 앉아버렸다.
.
그리고 그 날 밤.
".....박정민."
-"전화하지 말랬잖아요..."
"...만나고 싶어."
-"싫어요,난.."
".......한 번만."
-"..........."
"....한 번만."
-"......아까..난 할 얘기 다 했어요.."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어."
-"김현중씨,진짜..."
"....."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만 보자."
-"......"
'마지막...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아프게 와 닿았는지,
왜 내가 당신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당신에게 달려와야 했는지...'
정민이 어두운 밤 택시를 타고 현중의 회사를 향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