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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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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ule 17
└→ 외줄타기
정민이 화장실의 세면대 앞에 서서 반지를 씻고 있었다.
"......"
그렇게 반지를 바라보다가 정민이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알 수 없는 표정의 자신이 보였다.
정민이 거울 앞의 정민을 보며 말을 걸었다.
"....홀가분해?"
침묵이 이어졌다.
".....기뻐?"
거울 속의 정민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럼.....슬퍼?"
정민의 애달픈 시선의 끝이 자신의 입술을 향했다.
하지만 고개를 내저은 뒤 입술을 닦아내었다.
그리곤 정민이 반지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허전한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형준이만 생각하자....여기서 김현중한테 흔들려봤자..'
정민이 굳은 마음을 먹은 뒤 빠른 걸음으로 건물에서 나왔다.
지금껏 몇 번 와 본적도 없지만 이젠 '아예' 올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곳이였다.
정민이 건물의 밖으로 나와서 빤히 건물을 올려다봤다.
큰 창이 썬팅되어 있어 전망 하나는 끝내주던 현중의 사무실이 보였다.
'...나도 열심히 잊을테니까..당신도 열심히 잊어줘요.'
정민이 이내 높이 들었던 고개를 내린 뒤 미련 없이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그 곳을 벗어났다.
"......."
사무실 안에서 정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현중이 이내 시선을 돌렸다.
.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 정민의 마음이 다급해져왔다.
1분이라도 1초라도 빨리 도착해서 형준에게 커플링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았다.
"아저씨,좀만 빨리요!!"
"....아,거 학생. 성격 되게 급하네."
"아저씨가 너무 굼뜨잖아요!"
"뭐야?!"
"아,아..알았어요.빨리 가줘요~"
.
그렇게 어느새 도착한 형준의 동네.
집에 찾아가기는 그렇기 때문에 전화를 해서 불러내야 하는데 과연 나와줄지가 의문이였다.
정민이 커플링을 만지작 거리며 떨리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휴우."
형준에게 전화를 걸고는 정민이 신호음에 집중을 했다.
정민이 속으로 '받아라,받아라,제발 받아라'를 연신 외쳐대며 듣고 있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아."
확실히 어제부터 전화를 받지는 않고 있었지만 오늘은 받지 않을까 싶었던 정민이였다.
하지만 포기할 리 없는 정민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3번, 4번. 계속되는 전화.
하루종일 핸드폰만 잡고 사는 형준이 핸드폰을 못 봤을리가 없었다.
".....아씨.."
정민이 계속 받지 않는 전화에 살짝 기분이 상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신호음이 계속 가고 이번에도 받지 않아 정민이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였다.
-"여보세요."
".......어..."
-"......"
"...김형준!!!"
-"왜."
"왜 전화 안 받아!"
-"받기 싫어서."
'....그래,지금 내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형준의 가시돋힌 말에 정민이 무안해졌는지 머리를 긁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나 너네집 앞이야."
-"...."
"....나와줘."
-"너랑 할 얘기 없어."
"...난 많아.."
-"난 없어."
"형준아...."
-"........"
"제발 나와줘."
정민의 슬퍼보이는 목소리가 형준의 마음에 와닿은 듯 했다.
-"......."
조용히 전화를 끊은 형준은 얼마가지 않아 집 밖으로 나왔다.
정민이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대문을 열고 나오는 형준을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
형준이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정민이 잠시 당황한 듯 서 있다가 형준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형준아."
"......"
"형준아."
"듣고 있어."
"....그냥..말 할 건..이거 뿐이야...미안해.."
"....."
"......진짜 미안해..."
정민의 슬퍼보이는 눈동자가 형준을 바라봤다.
하지만 형준은 정민과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진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너 두고..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
"......한 번만 용서해줘.."
"........"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싹 다 정리했어."
".........."
"나..너 까지 없으면 어떡하라고."
".....허우,진짜..."
"......"
"..처음부터 그러지 그랬어..뭐야,너 진짜...
실컷 다른 남자랑 놀고 와서...내가 떠난다니까...나 없으면 안 된다고..?"
"......."
형준이 울먹거리는 말투로 말하자 정민이 형준을 바라봤다.
어두운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형준의 뺨엔 분명히 눈물 한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정민의 콧등이 짠해져오기 시작했다.
".....형준아..."
정민이 떨리는 손으로 형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형준이 어깨를 움찔하곤 정민의 손을 밀어냈다.
"...나 건드리지마..."
"..김형준.."
"다른 남자 만진 손으로..나 만지지 말라고..."
"........"
형준의 볼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덩달아 눈에 눈물이 고인 정민이 형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용서해줄래?..."
"......"
"...내가 어떻게 할까?..응?"
'가슴이 아파온다. 미칠듯이....
여린 마음에 니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다 알 것만 같아서..
여기서 용서해달라고 매달리면....슬픈 건 너 뿐이란 걸 알아서...'
그렇게 울먹이던 정민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준은 여전히 정민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정민이 그런 형준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이내 형준의 한 쪽 손목을 잡았다.
"나 좀 봐줘.."
"........"
"......형준아.."
정민이 고개를 푹 숙인 형준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 쪽 손을 뻗어
형준이 푹 눌러 쓰고 있던 모자를 벗겨냈다.
"......"
형준이 당황했는지 고개를 올려 정민을 바라봤다.
"......"
얼마나 울었을까.
충혈된 두 눈이 빨갛게 부은 애교살이 빨개진 코가...
형준의 슬픔을 그대로 정민의 마음에 전해져 오게 만들었다.
형준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정민의 손을 뿌리친 채 얼굴을 가렸다.
"......"
"......"
정민이 입을 열지 않았다.
더 이상 형준을 울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렇게 형준의 숨죽인 울음이 계속 됐다.
정민은 형준을 보듬어주지도 못한 채 그렇게 우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벌이라면 벌이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데,
다가가 안아 줄 용기조차가 없다는 거. 뿌리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먼저 떠오른다는 거.
...벌이라면 그것도 큰 벌이였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그렇게 할 테지만,
이미..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그렇게 조용한 침묵이 계속 되던 순간 놀랍게도 입을 먼저 연 건 형준이었다.
많이 진정이 된 듯 울음을 멈췄지만 형준은 여전히 땅을 응시했다.
".....정민아."
"........응?"
"...나...너 용서했어."
형준이의 말에 정민이 놀란 듯 형준을 바라봤다.
"...뭐..한 번쯤..한 눈 팔수도 있는거지...
너도..죄책감 꽤나 느껴가면서 만났을 거 아냐."
"........"
'그런데 니 눈은 왜 그렇게 슬픈건데...'
".....그렇지? 그래도..뭐 나 신경쓰면서 만났겠지.."
"........"
"......근데 난...."
'....그런 눈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
".....내가 용서가 안 될 뿐야."
'..용서가 안된다니...'
"...이렇게 사랑하는 넌데...내가 널 믿지를 못해."
'.......무슨 말이야..'
"...사랑하려면 내가 널 믿어야 하는데..널 믿어 줄 자신이 없어."
'......무슨 말하는 데...'
"..다 너 때문이라고..죄책감 가지지마. 내 탓이야."
'......형준아.'
"....사랑하는 사람 사이엔 신뢰가 있어야 한다잖아.
난 너 사랑하는데 신뢰가 없어.. 니가 어딜 갈까봐 두려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을까봐...지금 이 순간까지도."
형준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정민을 바라봤다.
'미치도록 슬픈 눈으로 미소를 지어봤자...슬픈 얼굴로 밖에 기억이 안 되는데..
왜 애를 써서 미소를 짓는 건데.....'
"...헤어지자."
맑은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