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子의 치명적인 유혹*36
-봄은 오지 않는다-
한참동안을 형준의 손목을 잡고 달린 영생이 어떤 공원에 도착해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헤엑...헥.."
"...헥...헥.."
"...헤엑...도시락..떨어뜨렸지..?"
"......괜..찮아요....먹을 사람은...관심도 없는 거 같으니까.."
"........"
형준의 씁쓸해 보이는 말에 영생이 형준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도로의 표지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더 뛸까..?"
"....네?..."
"..니가 아까 본 거 다 잊어 버리게."
"........"
형준이 영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눈썹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울지 않으려 해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 형준의 볼을 이내 눈물로 적시었다.
"흐으으...흐으윽....흐으으으..."
형준이 끝내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어댔다.
영생은 갑작스레 큰 소리로 우는 형준을 보며 잠시 당황한 듯 서 있다가
그런 형준의 옆에 따라 주저 앉았다.
그리곤 옆에서 우는 형준의 눈물을 하나하나 다 닦아주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형준의 울음이 계속 되었다.
.
대기실에서 영생을 기다리고 있던 정민은 몇 분이 지나도 영생이 오지 않자
주머니를 뒤적 거렸다.
"어...영생이형 폰 나한테 있는데..아,허영생.완전 느림보 굼벵이새끼."
정민이 볼을 부풀리며 욕을 읊조리다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재수없게도 한 발 늦게 현중의 열애설에 관한 진실을
밝히러 온 기자들과 마주 할 수 있었다.
"어,박정민씨?"
"..하하...안녕하세요.."
정민이 속으로 '좆됐다'를 연발한 뒤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평소 김현중씨랑 굉장히 친하시던데.."
"하하. 조금 친해요,조금~"
"두 분의 열애설 사실은 알고 계세요?"
"..두 분이라면?"
"김현중씨, 심천아씨요."
"아하하~..네..뭐,기자분들한테 저도 익히 들어서~"
"평소에 김현중씨가 심천아씨와 친했었나요?"
"그냥 단순하게 친한 동료였어요.스캔들 그거 사실 아닙니다~
아..그런데 제 스캔들에 관해서는 관심 없으세요?"
정민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 뒤 싱긋 웃어보였다.
"여자친구 있으세요?"
"하하하하! 얘기해드려요?"
"어어,진실 폭로인 겁니까? 여자친구 있으세요?"
"..어우..당연한 거 아니에요?"
"오오! 이거 갑자기 밝히시는 건가요?"
"사랑합니다. 저희 팬 여러분들. 전 여러분들 모두의 것이에요! 마구 휘둘러주세요!"
가히 '인터뷰 박정민 중심으로 만들기 1인자'답게
기자에게 상큼하게 하트를 날려 준 뒤 해맑게 웃어보였다.
카메라맨도 '이건 아닌데'싶어서 당황했지만 이내 정민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냈다.
.
"다 울었어?"
영생의 물음에 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갛게 부어오른 두 눈과 시뻘건 형준의 얼굴을 보고는 영생이 피식 웃었다.
"풉.."
"...우...웃지마요.."
"..안 웃었어..크크.."
"..지금도 웃으면서.."
형준이 영생을 보면서 입을 삐죽였다.
그런 형준을 보면서 영생이 피식 웃었다.
"아..그런데..스케쥴..괜찮아요?"
"다음 스케쥴까지 몇 시간 남았어."
"..아아..그래도..들어가 봐야죠."
"...왜...나는 김현중이 아니라서 싫어?"
"......하하..하..갑자기 무슨.."
"....이 정도 됐으면...눈치는 채야하는 거 아냐..?"
"..네?"
".....내가 너 웃는 거 보고 싶을 때가 있을 거라고...그랬었지."
형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영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웬 남자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거랑,
일 하는 곳에 혼자 찾아가는 거랑,
앞에서 몇 분이나 앉아서 계속 울어대는 남자 눈물이나 닦아주고 있는 거.."
"......."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면..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건데?"
".....에?"
"....."
"..!!!!!"
영생이 형준의 입술에 1초 시착 한 뒤 바로 떼고 선 민망한 듯 벌떡 일어섰다.
형준은 갑작스러운 일에 그대로 땅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지금 아주 짧았지만 영생이 분명 제 눈 앞에 왔다가 갔다.
차라리 정민이라면 모를까 옆에서 항상 조용히 지켜보던 영생이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자신의 감정을 형준에게 고백을 했다.
형준이 좀 전보다 더 충격적인지 커다란 눈을 하고선 영생을 빤히 바라봤다.
영생은 그런 형준의 반응에 무안한 지 괜히 뒷 목을 만졌다.
"..에..으...저기.."
".....그냥....알아 두라고..니가 너무..몰라 주니까.."
"자..잠깐만요."
"......뭐?"
"...저기...금방요...뭐가 왔다갔죠..?"
형준의 분위기 없는 발언에 영생이 표정을 찌푸리다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형준을 가리킨 다음 제 입술을 가리켰다.
"....저기..허영생씨..."
"....?"
"제가 아무리..금방..현중이 형이...그런..모습을 봤다고 해도...
그래도...이게...제가...맞바람을..치는 게...그게 이 상황...."
"...뭐?"
"못...들은걸로...하면..안 돼요...?"
형준이 어렵게 꺼낸 말 한마디에 영생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내 예상은 했었다는 듯 씁쓸하게 웃으며 형준을 바라봤다.
"....못 들은 걸로 하면..지워져? 니 머릿 속에서."
"...안...되겠죠..하지만....저....저번처럼..장난이라고...그렇게 말해요..어서..!!"
갑자기 영생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장난이라고 외치라는 형준을 보면서
영생이 당황한 듯 있다가 이내 그런 형준의 손가락을 치워냈다.
"....장난 아냐..저 번도 장난 아니였고..지금도 장난 아냐.."
"..하!하하!하!..제..가 좀 매력이..진짜 있어요.하하하~"
".....응,매력 많아."
"...유머..인데..."
"이렇게 된 김에 더 이상 안 속이려고...김현중도..심천아랑 분위기 좋아보이고."
".......아니에요."
"....뭐?"
"현중이 형..입으로 듣지 않는 이상은...사실을 모르는 거에요."
"그럼 왜 거기서 도망쳐 왔는데."
"..그..그건..."
형준이 영생을 째려보다가 이내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일어서는 형준을 보고 영생이 움찔했다가 밀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듯
영생도 형준을 얄밉게 쳐다봤다.
"...현중이 형 주변 사람들이랑 얽히는 건...박정민씨로도 벅차요.."
"그래도..이렇게 까지 했는데..신경은 쓸 거 아냐.
바보같이 눈치 없이 굴지는 않을테니까 그걸로 됐어."
"..저..저기요,허영생씨..!!!"
"...?"
형준이 영생을 딱 째려보며 말 했다.
"..느끼해요!"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영생이 쫒아오지 못하게 빠른 걸음으로 뛰었다.
처음엔 잠깐 형준을 잡으려고 하던 영생이 이내 발걸음을 늦추며 시계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스케쥴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듯 스튜디오로 향하며
저 만치 보이는 형준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곤 떠오른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댔다.
"......"
갑자기 영생의 얼굴이 붉어져왔다.
"...다음엔 이 걸로 만족 안 해."
.
형준이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공원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될 쯤이 되서야 걸음을 멈췄다.
"헤엑...헥..."
그리곤 가만히 서서 손으로 입술을 닦아내었다.
"...허영생...뭐야,진짜.....허영생도 싫고...."
다시 형준의 머리에 현중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현중도.....다 싫어.....흐으으.."
질리도록 울었기 때문에 울음은 다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얼마나 많은 눈물이 남은 건지 형준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형준이 그렇게 가만히 서서 한참동안이나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
천아가 조금 진정이 됐다는 듯 현중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미안해요...이거..기자가 찍었으면...그냥 스캔들 사실 인정하는 건데...에..
매번 이렇게..."
"우리가 아니면 된 거에요.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인사하고 말 해요.
아무리 그렇게 해도 우리가 계속 아니라고 하면 관심 뗄 테니까."
"....현중씨는..저랑 똑같이 데뷔했는데...진짜 어른 스러워요.
프로 같다고나 할까?..앞으로..또 실수 할지도 모르지만..잘 부탁드려요.
그럼 전 리허설 하러..갈게요."
천아가 현중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현중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로비에 서서 조용히 바람을 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만치 영생이 다가 오는 게 보였다.
현중이나 영생이나 둘 다 당황한 상태였지만 피한다고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아
현중이 먼저 영생에게 다가갔다.
"...때린 거..미안해."
"안 아파."
"....삐졌냐?"
"..안 삐졌어."
"내가 좀..다혈질이라..그래도..묻고 싶은 게 있어."
"....."
"김형준에 대해서..니가 알고 있는 거...더 있지?"
"....말 안하기로 약속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형준과 영생의 사이에 현중의 표정이 잠시 어두웠지만
이내 웃으며 다시 영생을 바라봤다.
"...뭔데?"
"클럽에서 일하고 있어.서빙..뭐 그런 건 거기서 나온 것 같은데.
뭘 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일 한대."
"...어느 클럽?"
"강남에..너도 알 걸? 물어보니까 DSJ가 맨날 가는 곳이라던데."
"....아...거기?"
영생이 한 쪽 입꼬리를 스윽 올리면서 현중을 바라봤다.
현중이 당황함과 실망이 가득한 얼굴을 웃음으로 감춘 채 영생에게 말했다.
"..내가 벌어다 주는 게 좀 모자랐나..?..하.."
어색하게 웃는 현중을 보면서 영생이 피식 웃었다.
"넌 이제 그 여자랑 잘 해보지 그래? 난 걔랑 잘 해볼 생각 있으니까."
영생이 싱긋 미소를 보인 뒤 현중의 옆을 지나쳐갔다.
.
"자자~ 더 주문 하실래요?"
"1000cc 하나 갖다주세요."
"네,알겠습니다~"
형준이 밝게 웃으며 클럽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다.
클럽에서 일하는 게 마지막이기도 하고 기분 다운 되어 있어 봤자
변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자정이 넘고 새벽이 다 되어서도 형준의 일과가 계속 되었다.
하지만 형준은 차라리 바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용히 할 일이 없어봤자 계속해서 현중이 떠오를 거고
그러면 또 한동안 우울해질테니 차라리 이렇게 바빠서 모든 걸 떠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형준아!"
"..어어? 김규종? 웬 일이야?"
"너 마지막 날이잖아,오늘. 고마워서."
"으히히!"
"사장님한테 말하고 왔어, 어차피 손님들 다 빠지는데 나가자."
"그래도 괜찮아?"
"내가 내일부터 와서 열~심히 일하면 돼."
"히히,그래~"
형준이 갑작스레 찾아온 규종이 반가워서 웃으며 탈의실로 들어가
사복으로 후다닥 갈아 입은 뒤 밖으로 나왔다.
클럽 밖의 찬 기운이 형준의 볼에 마주쳤다.
"아,추워..언제 날씨가 풀리나 몰라.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
형준이 오들오들 떨다가 따뜻한 옷을 입은 규종의 팔에 달려들었다.
규종에게 팔짱을 끼고는 두 손에 입김을 불며 언 손을 녹였다.
"야,너 그러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오해해! 떨어져!"
"아,추워 죽겠는데 오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어! 아니면 니가 그 옷 벗어 주던지."
"아..그건 싫어."
형준이 언 손을 불면서 걷고 있다가 자기 앞에 가만히 서 있는 한 신발을 보고는
고개를 빼꼼히 들었다.
"....김형준...."
현중의 차가운 눈동자가 형준을 그대로 얼려버렸다.
이제 다시는 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