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와 죽음사이 .................
Kissing Or Dying
Killing Or Desertting
키스하거나 죽거나
죽이거나 놓아주거나
* K O D 27 한 걸음 더
조용한 두 사람의 아침 식사는 어색하기만 했다. 아무런 대화도 오고가지 않았고, 아무런 시선도 오고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섣불리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현중은 현중대로 정민에게 말을 꺼내는 게 힘들었고, 정민은 정민대로 현중에게 말을 꺼내는 게 힘들었다. 하루하루 어색해져가기만 하는 관계는 풀릴 듯 하면서도 계속해서 멀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현중은 어떨 지 모르지만, 정민은 그런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현중이 형준과 무슨 사이로 발전하고 있는 지도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고, 또 현중이 자신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할까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해서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저기...형."
"...어?"
정민이 갑자기 말을 꺼내자, 당황한 현중은 숟가락을 내려다놓으며 정민을 바라봤다. 그런 현중을 어색하게 바라보던 정민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꺼냈다.
"오늘....공연 있어?"
"없어.....음...어, 연습만."
"저녁에 뭐 먹고 들어올 거야?"
"....왜?"
"아니,뭐...반찬 없어서. 뭐라도 해두게.."
"잘 모르겠는데..."
".....형 좋아하는 거 해둘게."
정민은 용기를 내어 현중을 향해 싱긋 웃어보였지만, 현중은 그런 정민을 보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시선을 밥으로 옮겼다. 정민은 그런 현중을 보며 씁쓸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숟가락을 놓았다. 별로 밥 맛도 없었고, 이렇게 어색하게 현중과 식사를 해야한다는 게 섭섭하기만 해서 더 이상은 먹고 싶지가 않았다. 정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씽크대로 가려는 찰나였다.
"손..그런데 뭐 할 수 있냐?"
"..어?"
현중의 목소리에 정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았다. 그러자 현중이 붕대가 감겨져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정민은 순간 손을 숨길 뻔 하였지만, 그렇게 하면 손이 다쳤을 때 처럼 현중이 화를 내 버릴 것만 같아서 자신의 손을 조용히 바라봤다. 현중은 다소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정민의 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손 말야. 병원 안 가봐도..돼?"
"아,이거...뭐...대충 소독하고 나니까 괜찮더라고. 이제 아프지도 않고."
".....괜히 아픈데 무리하는 거 아냐? 그냥 저녁 하지마. 알아서 사먹고 올게."
"........."
처음엔 현중이 걱정을 해 준다고 느꼈었지만, 밖에서 밥을 사먹고 오겠다는 말은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을 시간이 없어진다는 건 싫었다. 정민은 현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별로 아프지도 않고, 정말이야. 그니까..저녁은 들어와서 먹어."
"........."
"진짜 안 아파."
"......알았어."
현중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고, 정민은 다행인 듯 한숨을 내쉬어보였다. 사실은 손이 아팠다. 그 정도 피를 흘렸는데 살짝 베였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정민은 병원을 찾아 갈 용기가 없었다. 첫 번째는 혹시나 에이즈라는 사실이 확실하다는 걸 알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게 이유였고, 두 번째는 누군가가 정민을 치료해주다가 옮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때문이었다.
정민이 했던 치료라고는 이를 악 물고 소독약을 들이붓고 약을 바른 다음 아무런 피도 새어나가지 않게 손이 두 배는 두꺼워 보일 만큼 붕대를 칭칭 감았던 것 밖에는 없었다.
상처가 잘못되서 더 심해질지도, 흉터가 남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명히 병원의 치료가 필요했는데, 그걸 하지 않았으니 상처가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민의 상태로써는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 보다는 그 상처를 숨기는 게 더 절실상태였다.
어쩌면, 붕대와 상처는 지금 정민과 현중이 처하고 있는 상황과 같을 지도 몰랐다.
붕대로 가려져 있는 서로의 마음엔 곪아터진 상처가 숨겨져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단지, 그 상처를 흉터 없이 치유해 낼 수 있을까, 없을까.
그게 두 사람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
집 밖으로 나온 현중이 연습실에 들어가지 않고 기대어 서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바라봤는데, 아무래도 만날 시간이 조금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
현중이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한 숨을 쉬고 있을 즈음, 저 멀리서 눈에 익숙한 한 남자가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현중은 그 남자를 보자마자 기쁜 듯, 씁쓸한 듯 표정관리를 하지 못 했고 남자는 단 걸음에 달려와 현중의 앞에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헤엑...헤...느..늦어서 미안해요..."
"......."
현중은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는 형준이었다. 자신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현중은 형준을 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정민에게는 연습이 있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오늘은 공연도 연습도 없는 날이었다. 원래 형준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날이었는데, 정민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바람에 현중이 얼마나 놀랬었는지 몰랐다. 정민에게 이런 거짓말을 해 보인 자신은 한심하게 짝이 없어보였지만, 또 그것도 잠시 형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은 손쉽게 날아가버리곤 했다.
"뭐하다 늦었어?"
"헤엑..헥..미안해요...오다가..버스 번호를 모르는 유치원생이 있어서...후우....나도 도저히 몰라가지고....그냥 데려다줬어요.."
"......"
"....진짜 미안해요..."
현중은 아직도 숨을 헐떡이는 형준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요즘에도 참 이런 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거짓말 하지 말라며 우겨댔을 현중이었지만, 형준이었다면 그 아이를 집에 데리고 가 줘도 남을 판이었다. 정말 요즘 같은 시대에 찾기 힘든 바보같이 착해빠진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준 적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게 몇 번인지 세기조차 힘든 현중으로썬 형준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처럼 느껴졌다.
"착한 일 했으니 용서해줄게."
"흐으,정말요?"
현중은 형준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먼저 연습실 안으로 들어섰다. 형준은 그런 현중의 미소에 두근 거리는 듯 얼굴을 밝히고 서 있다가 현중을 뒤따라 연습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연습실은 두 사람에게는 꽤 소중하다면 소중한 공간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때면 현중은 마치 습관처럼 연습실에 와서 베이스를 치거나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고는 했다. 그리고 최근들어 현중이 힘들어 하고 있을 즈음, 형준은 항상 그런 현중의 옆에 있었다. 두 사람이 가장 오랜 시간을 공유한 곳이 이 연습실이라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 곳에서 유달리 큰 위로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통쾌하게 해결해주는 형준은 아니였지만 현중에게 있어서 형준은 실로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저기요- 현중씨."
"......?"
"나 기타 쳐주면 안돼요?"
"...뭐?"
"기타도 칠 수 있죠?"
형준이 연습실 안에 있는 기타를 가리키며 말했고, 현중은 잠시 형준과 기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현중은 머지않아 기타를 손에 들며 자리에 앉았고, 형준은 잔뜩 설레이는 얼굴로 그런 현중에게로 다가와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흐흐,신청곡 받아요?"
"음.....원하실대로."
"팝송도 가능해요?"
"내가 아는 한."
"이루마꺼 아무거나...해 줄 수 있어요?"
현중은 잠시 악보를 머릿 속에 그리는 듯 하더니 기타 줄을 조심스레 튕기었고, 머지않아 아름다운 멜로디의 기타 소리가 형준의 귀에 맴돌았다. 음악이라는 건 참 신기하게도 두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더 설레이게 만들었고, 서로를 향해 조금씩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수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두근,두근,두근.
접해서는 안 됐을 사랑은, 벌써부터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영생이 형!"
"왜?"
"근데 나 진짜 생각 많이 해 봤거든?"
"뭐를?"
"아니,왜 내가 저번에 얘기했었잖아. 소개받았던..."
규종의 말에 영생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연인즉슨, 며칠 전 재중이 규종에게 한 여자를 소개시켜 준 것이었다. 헌데 영생이 봐도 여자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였다. 그래서 영생은 그 여자에 대해 물어보고 다니면서 정보를 입수한 뒤 입수한 정보를 규종에게 털어놓았다. 흔히들 말하는 '뒷담화'를 한 거였다. 다행히도 효과가 있었던 건지, 규종은 그 여자를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고 말이다.
헌데 갑자기 규종이 다시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단연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는 거였다.
"근데...그게 왜?"
"아니 말야, 솔직히...형이 말한 대로 소문도 안 좋고 하긴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그런 걸로 패스해버리기엔...너무 아까운 거 같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봐도...내가 다시 그런 여자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나 어떡하지? 다시 연락해볼까?"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그..그 여잔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
"아,그렇긴 한데...아무리봐도 이쁘단 말야. 뭐..남자가 많긴 해도, 그래도 그 정도 미몬데 남자가 안 따르면 이상한 거 잖아. 안 그래?"
"아..여튼 안 돼! 니가 아까워!"
"나보고 왜 넝쿨째 들어오는 호박을 찼냐고 그러던데, 다들?"
".....아..모..몰라! 하여간 안돼! 그 여잔 진짜 아냐! NG야! 어...어어!! 저거...저저. 저 여잔 어때?!"
영생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한 여자를 가리켰고, 영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한 규종은 그 여자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큰 안경에 촌스러운 머리, 주근깨 많은 못생긴 얼굴에 교정까지 해서는 특이한 패션감각을 가지고 있는 한 마디로 '추녀'라고 할 수 있는 여자였다.
"아....장난 해, 나랑 지금?"
"요즘엔 이쁘다고 다 사귀면 너 치여먹어. 된장녀라고 못 들어봤냐?"
"그 여자가 된장녀래? 그런 소문은 없었잖아."
"아..아니, 그게 아니라...적어도 저 여자는 돈이 안 들거 아냐!"
"그래서 형은, 저 여자랑 잘해보란 말야?"
"가..가능하다면!"
"아,도대체 형 왜 이렇게 날 안 밀어주는.........어...어...혹시..."
"뭐...뭐?!"
규종의 의미심장한 눈빛에 영생은 제 풀에 쫄아선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그 모습을 본 규종은 더 게슴츠레 눈을 뜨며 영생을 빤히 바라봤고, 영생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까지 떨어가며 그런 규종을 바라봤다.
"형...혹시..."
"뭐...!!"
"내가 소개받은...그 여자한테 관심 있는 거 아냐? 그래서 나랑 잘되게 안 하려고 그러는 거지! 형이 관심있으니까!! 어? 그런거지?! 어?!"
영생의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풀어졌고 안도감에 한숨이 나왔다. 알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루에 몇 번이고 영생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게 규종이었다. 이런 규종을 사랑하는 게 마냥 기쁘고 행복하지만은 않은 영생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마음을 접어두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 영생이었다. 그 까짓 어려움에 포기해버릴 만큼 규종에 대한 마음이 작고 사소한 게 아니였으니까. 하루하루 지날 수록 영생의 마음은 커져만 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후우...바보같아, 너."
"갑자기 뭐가! 어?! 맞지? 그 여자 맘에 드는 거지!"
"아니거든요?"
"그럼 뭔데!"
"....어쩜 그렇게 모르냐, 한심하게..."
"뭘! 어?! "
"안 가르쳐줘, 바보한텐."
영생은 규종의 머리를 스윽-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한심하단 표정으로 규종을 바라보다가 규종을 지나쳐 걸었다. 규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런 영생의 뒷모습을 바라봤고, 영생은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그래도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두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 마음이 10년, 20년이 지속된다면 20년 후에도 고백 할 마음이 있었다.
단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길 바랬다.
내가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
단잠을 깨우는 별로 반갑지 않은 전화벨 소리에 정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현중은 아까 연습이 있다고 나가서 집이 텅 비어있었는데, 왠지 모를 음산하고 꿀꿀한 기분이었다. 정민은 핸드폰을 한참이나 째려보다가 끊어지지않는 벨소리에 귀찮아진 듯 발신자를 확인치도 않고,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
분명 전화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편 너머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가 않았다. 정민은 핸드폰 상태가 이상한 건지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시 귀에 갖다댔다.
"저기요, 대답하세요..."
-........
"...말 안 하면 끊어요?"
-........자..
"네?"
-..잠깐만...
핸드폰을 끊으려는 찰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간 정민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며칠간은 잊고 있었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마자, 정민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이런 고통으로, 지옥으로 내몰아버렸던 장본인.
-박정민, 나 김영운인데...
"........."
-...듣고 있지?
정민은 그대로 입이 얼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머릿 속이 새하얘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영운만은 잊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정민이 처한 상황이 너무 복잡하고 당황스러워서 잊고 있었던 영운이었는데,이렇게 또 다시 영운이 머릿 속에 떠오르기 시작하자 머릿 속이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
-할 말..있어서 전화했어,대답 안해도 돼니까...끊지만 마.
목소리를 듣고 있던 정민이 조심스레 시선을 내리깔았다. 영운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분명 저도 정민만큼 힘들게 분명했다. 그토록 미웠던,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존재였는데 이런 동병상련의 처지가 되니 영운이 딱하게도 여겨졌다. 하지만 무슨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정민이 그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한들,그가 자신에게 이런 일을 겪게한 장본인을 용서해 줄 만큼의 신적인 마음 씀씀이를 가진 건 아니였다. 아직 그가 치가 떨리게 미운 건 변함이 없었다.
-그 애인이랑...어떻게 지내는 지는 모르겠는데....알고는 있지? 전염이라는 거.. 마땅히 완벽한 치료도 보장 안 돼고...일단은 최대한... 접촉하지 않는 게 상책이야. 전염 된 에이즈 환자 중에....
90% 넘는 게 다 섹스때문이래. 그니까 이왕이면, 아니 꼭... 애인이랑은 멀리하고... 일단...너부터 병원 가 봐...가서 검사맡고, 결과 확실하게 나오고 나서...그러고 판단하는 게 더 좋으니까... 2~3개월은 지났으니까..지금 검사 하면 될 거야. 이름 익명으로 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본인한테 밖에 안 밝혀.. 나중에...그 애인한테 얘기하는 건 니가 어떻게 생각해보고....
"......."
-......나...지금 이러는 거 되게 우습지?
"......."
-어이 없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나 아니였으면 너 이런 일도 없었을건데. 미안해...어떻게..용서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냥 죽을 때까지 너한테...죄책감 느끼면서 살아갈게..
"......."
-그냥 한 가지 원하는 게 있다면....
"........"
-정말...정말, 너한테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끊을게.
정민의 입이 조금 열리려는 찰나, 전화는 끊겨버리고 말았다. 정민은 끊어져버린 핸드폰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분명 입을 열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그건 정민도 알 수가 없었다. 정민이 생각하고 내뱉은 말이 아니였으니까. 그래도 영운이 전화를 빨리 끊어버려서 다행이었다. 그 뒤에 정민이 무슨 말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건 나쁜 말이 아니였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
머릿 속이 또 혼란스러웠다. 사람의 정이란 원래 이렇게 연약하디 연약한 건지 영운을 절대 용서 못한다며 굳게 마음을 먹지는 못할 망정, 그를 걱정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게만 느껴졌다. 이거야 말로 제 손을 잘라간 도둑에게 그 도둑의 손이 다치지나 않았나 걱정하고 있는 꼴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정민은 진지하게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할까. 영운의 말대로 병원을 찾아가서 일단 검사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이렇게 앉아서 '나는 분명히 전염이 됐을거야'라는 혼자만의 추측 안에 있어야 할 지 쉽게 결정 할 수 있는 게 아니였다.
혹자 사람들은 당연히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염성이 높은 병이지만 '무조건' 감염이라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민은 겁이 났다. 전 부터 쭉 두려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병원에 갈 생각을 그라고 왜 해보지 않았겠는가. 포기를 하던, 치료를 하던 어쨌든 확실한 결과를 알고 있는 게 더 좋았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정말 기적 중의 기적으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만약에 정말 확실히 전염이 됐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10%, 아니 5%.... 어쩌면 1~2%일 그 희망도 사라져버릴 것이었다. 그게 두려웠다. 이 자그마한 희망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정민이였으니까.
한참을 멍하니 있던 정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헝클어진 머리를 제대로 가다듬었다.
"........김영운, 니 말 듣는 거....이게 영원히 마지막이다."
작게 말을 읊조린 정민은 아무래도 마음이 떨리는 듯 불안한 눈동자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다가 , 이내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입을 굳게 다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다부진 표정을 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