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와 죽음사이 .................
Kissing Or Dying
Killing Or Desertting
키스하거나 죽거나
죽이거나 놓아주거나
* K O D 30 말할 수 없는 일
"정민아! 정민아!"
"......."
정신을 잃고 멍하니 앉아있던 정민은 밖에서 들려오는 규종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이 시간에 규종이 왜 올까 하는 생각으로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무슨 다급한 일인건지 뛰어 온 듯 가쁘게 숨을 내쉬며 정민을 바라보는 규종이 있었다.
".....규종아?"
"하아....하...다행이다, 집에 있어서..."
"왜 그래..무슨 일 있어?"
"하...무슨 일..있어야만 내가 너 찾냐..."
규종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손을 얹었고, 자연스레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정민은 조금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채로 규종을 바라보다가 그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고 냉장고를 열어보이며 규종에게 물었다.
"뭐라도 먹을래? 먹을 건 없지만."
"휴.....밥? 어?근데 뭐야- 진수성찬...어?"
식탁을 바라 본 규종이 좀 놀란 눈치였다. 멀리서 봤을 땐 분명히 진수성찬으로 보였겠다만, 가까이서 보면 어제 저녁 부터 줄곧- 그 상태로 있었던 바람에 음식도 다 식어버리고 딱딱해져서 별로 먹음직스러운 꼴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규종의 당황한 표정을 눈치 챈 정민이 얼른 말을 꺼내었다.
"아,이거...버려야 되는 거야. 어제 못 먹어서.."
"아깝다,왜 안 먹었어?"
"같이 먹으려고 차린 건데, 어제 현중이 형이 안 들어 와서."
".......그래?"
규종이 순간 씁쓸한 표정으로 정민을 바라봤다. 정민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규종을 향해 미소지어보였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규종에게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정민아...그런데 현중이형이 원래 술 먹고 노는거 좋아하고 그러니까...아마 지금도 너한테 전화하는 거 까먹고 친구집에서 자고 있을 거야. 원래 그렇잖아~ 어?"
"....응,그랬으면 좋겠다."
"........."
".....괜찮아?"
"어떤데? 괜찮아보여?"
정민의 말에 규종이 정민을 유심히 살폈다. 그를 이렇게 심각하게 뚫어져라 쳐다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예전의 정민과는 다른 미세한 변화가 있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어두움같은 게 얼굴에 서려 있다고 해야할까. 규종은 정민의 모습이 걱정인 듯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일있어?"
"....있는 것 같아?"
"무슨...일이야?...너 왜 그래?"
"말 못해...미안."
"......왜?"
"...너한테 말 못하는 일이거든."
규종에게도 말을 못 하는 일이라고 하자 규종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정민이 걱정 되기도 걱정이 됐지만,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이나 섭섭함 같은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길래...말을 못하는데?"
"....알면 니가 싫어할 일, 나한테 실망할 일..."
"........."
.
.
.
"그래서 김현중한테도 말 할 수 없는 일.."
.
"음....."
".....깼어?"
해가 중천에 뜨고도 훨씬 더 넘은 시각이 다 되어야 형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뜨자, 그 옆에 앉아있던 현중이 형준을 향해 말을 꺼냈다.
"....으엇!"
".......?"
헌데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눈 앞에 마주친 사람이 현중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는 건지 형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고 나서야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 현중이 맞다는 사실과, 두 사람이 있는 이 곳은 모텔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발가벗은 채로 현중의 옆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리곤 그제서야 부끄러움이 확 올라오는 듯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썼다.
그 전까지 심각한 상황에서 잔뜩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던 현중은 그런 형준의 행동을 보자 좀 어이가 없어서였던지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해."
"반칙이에요..."
"반칙? 뭐가?"
"왜 김현중씨는 옷 입고 있어요....나는 안 입었는데..."
"....뭐? 옷?"
현중이 형준의 말에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상반신은 여전히 벗은 상태였다. 하지만 제 자신이 돌아다니기 민망해서 속옷과 바지는 입고 있던 상태였다. 현중은 이불 속에 들어간 형준을 바라보다가 그의 이불을 거둬냈다.
"이제와서 뒤늦게 부끄러운가 보지?"
"......."
현중의 말이 안중에 들어오는 건지, 안 들어오는 건지 형준은 계속해서 발가벗은 몸인 게 민망한 듯 현중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침대 밑에 떨어져 있는 제 속옷과 바지를 발견하고는 눈이 커졌다.
형준은 옷을 가져오려는 듯 이불로 몸을 감싸며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 막대한 통증이 다가왔고 형준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읏!!!!....으...아..."
놀란 현중이 눈이 커져선 형준을 바라봤고, 그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형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형준이 아픈 듯 인상을 쓴 채로 자신의 허리를 잡았다.
"왜 그래? 아파? 어디?"
"으...으으.."
형준을 보던 현중이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가 아프냐'니 이건 현중이 해야 할 말이 아니였다. 당연히 어디가 아프겠는가. 또 생각해보니 '왜 그래'라는 말도 웃기는 거였다. 형준이 아픈 것도 다 현중 때문인데 그 원인이 되는 사람이 해야 할 말이 아닌 것 같았다.
"허리..많이 아파?"
"...아..."
".괜찮..냐? 걸을 수 있어?"
"......으.."
형준은 정말로 아픈 듯 고개를 수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고통스런 신음만 흘렸다. 현중은 그런 형준을 걱정스레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해줄 게 없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리가 어떻게 아픈데?...만지면 좀 나을 거 같아? 아님, 파스 사올까?"
"......."
형준은 여전히 아픈 허리 때문에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현중의 말에 인상 쓴 얼굴이 조금 풀렸다. 이런 현중의 태도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놀랍기도 하고 꽤 감동적이기도 하여 현중을 짠히 바라봤다.
"........"
"허리 눌러줄까? 좀 누워봐."
".....어?..어..예?"
"엎드려,얼른."
현중이 갑자기 형준의 팔뚝을 세게 쥐더니 그를 뒤집었다. 단연 당황한 형준이었지만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에서 결코 자유로운 몸짓을 할 수 있을 만큼 얼굴에 철판을 깔지는 않았기 때문에 순순히 현중의 요구에 따라 응했다.
".....뭐..하게요?"
"그냥 조금만 있어봐."
"뭐...뭐해요!!!"
"...허리 뻐근하잖아."
현중은 단호한 표정으로 형준이 덮고 있던 이불을 형준의 골반까지 내렸고, 아슬아슬하게 골반에 걸쳐져 있는 이불이 계속해서 신경쓰이는 건지 형준은 고개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현중은 형준의 뒷통수를 잠시 바라보다가 손으로 형준의 허리 부분을 꾸욱-눌렀다.
"으..으아!! 아파요!!!!"
"아프면 낫는 거야, 원래."
"으..그..그만!! 진짜 아파요! 장난 아니고!!!"
"그니까 나으라고 해주는 거 잖아."
"으..아!! 진짜 아파요..그만하면 안 돼요?"
"조용히 가만히 좀 있어봐."
형준은 죽을 상 이었지만, 현중은 그런 형준의 표정은 고이 무시한 채 형준의 허리를 세게 지압했다. 하지만 형준도 아프기는 되게 아픈 듯,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아파요! 이제 진짜 그만.. 네?! 으아.."
"아,좀 가만히 있어봐. 뭐가 아프다고 그래."
"진짜 아프단 말이에요! 으..으! 그만!"
"아,진짜!! 정민이는 시원하다고 가만히 있던데 넌!! ......"
순간 아무런 생각 없이 말을 꺼낸 현중의 심장이 덜컥했다. 말실수를 해버린 것이었다. 지금 형준에게나, 현중에게나 '정민'이라는 이름은 절대 꺼내서는 안 될 이름이었다.
"......."
"......."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맴돌았다. 현중은 뒤늦게 정민의 이름을 꺼내 버린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내뱉어 버린 뒤였고 분명히 형준도 들은 뒤였다. 누구도 쉽게 먼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형준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현중을 바라봤다. 누구보다 어두운 표정의 현중이 보였다.
어제 핸드폰을 꺼버리고 오늘까지도 핸드폰을 켜지 않은 채 자신과 줄곧 있어온 현중이었는데, 분명 현중도 정민에 대한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죄인인 양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지는 현중을 보며 형준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김현중씨...."
"......."
"어제 사랑한다고 말해준 거....그거 진짜 너무 고맙고 기뻤는데요. 그걸로 내가 벌써 김현중씨 옆자리를 꿰찼다거나..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
"그러니까 나는 지금 현중씨가 정민씨한테 가더라도...아무런 생각 안 들어요. 외려 그게..맞는거라고 생각하구요."
"......."
"그러니까 지금 빨리 정민씨한테 가 봐요. 정민씨도 걱정하고 있을 거고...또 현중씨도 정민씨 걱정 안 되는 거 아니잖아요."
"......"
정민의 얼굴이 현중의 머릿 속에 하나 둘 씩 떠올랐다. 생각해보니까 어제는 분명 현중이 집에 빨리 들어가기로 약속을 한 날이었다. 정민이 그 아픈 손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해 준다며 현중에게 밖에서 먹고 오지 말라고 했었던 게 그제서야 떠올랐다. 어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들어가질 않았는데 분명 정민은 또 현중이 올 줄 알고 늦게까지 기다렸을 게 뻔했다.
현중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당장 정민을 향해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에게 미안하단 사과를 하고, 그가 지금 가득 가지고 있을 자신에 대한 걱정을 풀어줘야만 했다.
"미안..."
현중이 떨어진 옷가지를 재빠르게 주으며 발걸음을 모텔 밖으로 돌렸다. 뒤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현중은 옷을 입자마자 바로 정민에게로 달렸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현중의 빠른 발걸음 소리가 형준이 있는 방 안으로까지 들려왔고 엎드려 있던 형준이 조심스레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던 현중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만 같은데, 그는 없었다.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현중과 더 오래 함께 있을 수가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민에게 느껴지는 죄책감 때문에 결국 그런 말을 꺼내버리고 만 것이었다. 차라리 마음이 편하긴 편했지만, 섭섭한 감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 형준의 원망스런 목소리가 베개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뒤도 안 돌아 보고 가는 게 어딨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