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와 죽음사이 .................
Kissing Or Dying
Killing Or Desertting
키스하거나 죽거나
죽이거나 놓아주거나
* K O D 33 나는 아직도 당신을
현중이 애타는 목소리로 정민의 이름을 읊조렸다.
잊을 수 없었다. 버릴 수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박정민. 이름 세 글자.
함께 있어야만 했다. 소중히 여겨야만 했다. 사랑해야만 했다.
정민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포기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게 현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버리는 정민에게 자신에게 더 이상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 정민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걸로 맞대응을 했다.
자신이 못나보이기 짝이 없었다. 정민을 잊지도 못할 거라면, 그는 정민을 잡았어야만 했다. 널 잊을 수 없다고 간절하게 매달려보이기라도 해야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정민을 그렇게 쉽게 떠나보냈다.
"정민아......"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녔을까, 빠른 걸음으로 뛰던 현중의 발이 동네의 놀이터에서 느려졌다. 놀이터 벤치에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
그 남자를 보자마자 현중의 심장이 더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정민이였다.
아직 멀리 가지 않았던 정민은 동네의 놀이터 벤치에 앉아 그 남자의 말대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
정민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현중은 조심스레 정민에게로 다가갔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머릿 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정민을 찾은 이상 한 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현중이 정민에게 조금씩 다가갔고, 앉아서 울고 있는 그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제 시야 안에 웬 사람의 발이 들어오자, 당황한 듯한 정민이 신발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
"........"
정민과 현중의 눈이 마주치자마자, 정민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필이면 이렇게 울고 있을 때에 현중과 눈이 마주치다니 순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현중이 어떻게, 왜 자신에게 찾아온 건지 머릿 속이 혼란스러웠다.
마음을 잡아보려 애를 썼는데,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한 걸음 앞에 서 있는데 그를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자신이 너무 가여워서 눈물은 도저히 멈출 기미가 없었다.
".......박정민.."
한참동안이나 정민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현중은 힘겹게 입을 열었고, 현중이 잠긴 목소리로 정민의 이름을 불렀다.
"박정민..."
"착각...하지마, 형 때문에 울고 있는 거 아니니깐..."
"........."
"그러니까 신경쓰지말고 그냥 가."
"그럼 왜 이러고 있는데..."
"내가 형 때문에 우는 거 같아? 헤어지자고 한 건 나야. 내가 울고 있을 리가 없잖아. 헤어져서 너무 통쾌해서 우는 거야, 이제 끝이라서."
"....거짓말 하지마."
"진짜 부탁인데, 우리 이제 얼굴 볼 일 없게 만들자.. 나 형 보는 거 진짜 싫거든?"
현중에게 정민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지는 들리지가 않았다. 정민이 무슨 말을 하던, 지금 현중이 집중하고 있는 건 오로지 정민의 눈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이었다. 말은 거짓을 할 수 있었다. 교묘하게 꾸며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정민의 눈에서 흐르고 있는 지금의 눈물은 진실이었다.
그 눈물의 의미가 현중이었건 아니였건, 그는 지금 슬프다.
그런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그가 슬프면 현중도 슬프니까.
"박정민..헤어지는 게 힘들면..."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내가 형이 싫어져서...더 이상 형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헤어지자고 한 거야, 근데 내가 왜 힘들어? 오히려..오히려 후련한데?"
"거짓말 하지마. 그럼 왜 울고 있는데..."
"내가 울면 다 형 때문인 줄 알아? 내가 언제까지 김현중만 사랑하는 박정민일 거라 생각해?
더 이상 아냐, 난 형을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함께 있고 싶지도 않아.."
"제발....제발 거짓말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니 진심 그거 아니잖아."
"아니라고! 김현중 꼴도 보기 싫다고! 꺼지라고!!!.......제발 꺼지라고..."
"......"
그를 사랑했었고, 지금도 역시 사랑하고 있는 걸 깨달은 현중이었다. 그토록 많이 사랑했던 두 사람인데, 현중이 정민의 진심 따위를 못 읽을 리가 없었다. 여기서 정민의 거짓말을 믿고 정민을 포기해버린다면 그건 죽어서까지 후회가 될 일이었다. 정민에게나, 현중에게나. 그런 미련어린 후회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박정민.."
"아,진짜 되게 답답하게 구네..김현중, 너 꺼지라고. 보기 싫으니까!!!"
"왜 그렇게 마음을 숨기려는 거야! 너 이런 거 안 어울려! 내가 니 맘 하나 못 읽을 거 같아? 슬프잖아, 지금 왜 슬픈지, 왜 울고 있는지!! 제발 얘기를 해보라고!!"
"내가 왜 형한테 얘기를 해야 하는데!! 형 때문이 아닌데!! 착각하지마! 나 더 이상 형 때문에 울고, 슬퍼하고, 걱정하는 그런 박정민 아냐. 더 이상 그런 박정민은 없어."
"....그렇게 맘을 숨기면 도대체 너한테 돌아오는 게 뭐야?"
"씨발, 맘대로 생각 좀 그만해!!! 숨기는 거 아니라고!! 나 진짜 김현중 싫다고!! 더 이상 김현중 사랑하고 싶지도, 함께 있고 싶지도 않다고.. 그니까 헤어지자고 한 거 잖아. 깨끗하게 끝내. 왜 이렇게 마지막까지 더럽게 만들어!"
정민도 현중을 따라 화를 버럭 내버리고 말았다. 정민은 말을 해 놓고서 현중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수그려 버렸고, 현중은 그런 정민을 힘겹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박정민..."
"........"
"기회 줄게..거짓말 하지말고 솔직하게 말해... 부탁이야..."
"........"
"........"
".....헤어지자고 한 거 진심이야, 그니까 못 본 척 가...꼴도보기 싫어."
미안해.
"박정민...한번만 더 줄게...솔직하게 말해. 마음에 담아 놓고 있는 거...솔직하게...말해봐."
"형을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헤어지고 싶어. 지금 울고 있는 것도 형 때문이 아냐... 이제 형이 싫어. 예전의 마음은 더 이상 없어."
미안해.
"한 번만 더 줄게..제발 솔직하게 말해."
"구차해보이니까 제발 그만해... 형 싫단 말야. 그래서 진짜 헤어지고 싶어.. 우리 서로 만나기 전에도 아무 일 없이 잘 살았으니까, 지금 조금 힘들어도 나중에 되면 또 괜찮아 질 거야. 그러니까 우리 좋게 끝내자."
미안해.
정민은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헤어지자'는 말을 과연 자신의 입으로 몇 번이나 했을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상처받을 현중에게 몇 번이나 하면서 현중이 상처받는 만큼 자신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정민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현중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정민은 갑자기 그가 왜 고개를 들어올리는 지 의아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중의 볼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와 오랫동안 사귀면서도 그의 눈물을 본 기억은 없었다. 슬픈 영화를 같이 봐도 늘 눈물범벅이 되어서 나오는 정민인 반면,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울고 있는 정민을 한심스럽게 쳐다봤던 현중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으려고 했고, 울음이 나오는 상황이 있어도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참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의 앞에서 처음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그 슬픔의 깊이를 충분히 정민의 마음으로 느껴져왔다. 현중이 눈물을 훔쳐 닦으며 다시 정민을 바라봤다. 그리곤 한 마디, 한 마디도 꺼내기가 힘겨운 듯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마지막이야...진짜 더 이상 안 물어볼게. 제발...제발 부탁할게. 솔직하게 말해.
니가 말을 안 해주면...난 니 맘 알 수가 없어. 너 도와줄 수도 없고, 위로해줄 수도 없어. 너 떠나보내는 것 밖에는 못 한단 말이야...나 아직 너 사랑해. 너 잊기 힘들 거 같아. 너 없으면 안 돼..
그니까 제발...제발 부탁할테니까....솔직하게 말해줘. 이번에도 니가 전과 같은 대답이 나온다면....그 땐 그게 니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안 잡고 깨끗하게 헤어져 줄게."
"........"
"니 마음 속에 든 거만 말해... 아무런 상황도 생각하지 말고, 머리로 계산하려 들지 말고, 니 마음이...니 심장이 진실되게 말하는 거.....그거 하나만 말해..."
"........."
"........."
미안해.
"나는....김현중...."
"......"
.
.
.
"아직 사랑해...."
.
눈을 떠 보니 정민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혹시나'하는 생각이 스치는 바람에 바로 몸을 확인했지만, 다행히도 옷은 입고 있는 상태였고 컨디션으로 봐서도 관계가 오고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안도감의 한숨을 내쉬며 옆을 바라보자, 창문 앞에 서서 담배를 피고 있는 현중이 보였다. 담배연기를 정민에게 가지 않게 하려는 듯 창문으로 팔을 꺼내고 있긴 했지만 바람 때문에 담배연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콜록..."
"....어?"
정민의 기침 소리에 놀란 현중은 정민을 바라보며 재빨리 담배를 떨어뜨렸다. 그리곤 담배연기가 방에 들어간 걸 알았는 지 손을 내저으며 연기를 몰아내려 했다.
"아,미안...담배 때문이지?"
"......담배..."
"아...잠시 끊었..었는데 다시 피고 있어."
"....그래?"
정민은 어쩐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담배를 다시 피게 된 이유. 왠지 그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잠시 머리가 띵해져왔다. 무슨 일에선지 어제 일에 대해선 아무런 기억도 나지가 않았다. 분명 놀이터에서 울고 있을 때 현중이 찾아 왔었고 그가 자신에게 눈물 젖은 눈으로 말했다. 아직 사랑한다고. 그리고.... 정민은 대답을 했다. 나 역시 사랑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 다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헌데, 지금 방에서 같이 앉아 있는 걸로 보아 확실히 화해를 한 건 화해를 한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뒤늦은 후회감이 들기도 했다.
마음을 굳게 먹었어야 하는데, 현중의 눈물에 바로 마음이 녹아져버려 진심을 고백해버리다니. 이제는 정말 헤어지자는 말 조차도 꺼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였다. 에이즈란 사실을 밝히기는 커녕, 사랑하고 있는 마음만 밝혀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또 다시 현중을 피하는 건 싫었다. 그에게 다시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현중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물론 정민이 진심을 고백하기는 고백했지만, 분명 자신도 혼란스러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두 사람의 사이를 되돌려보려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에이즈라는 거.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현중에 대한 사랑은 에이즈란 병보다 더 끈질기고 강했다.
정민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문 앞에 서 있는 현중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허리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어떻게든 표현을 해 볼 생각이었다. 허락되는 범위까지는 어떻게든 표현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현중의 마음을 더 이상 쓸쓸하게, 외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허리에 둘러진 정민의 팔을 잠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현중이 자세를 돌렸다. 그러자 두 사람의 얼굴과 얼굴이 맞닿았고, 서로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이렇게 가까이서 서로를 바라본 게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정민을 바라보던 현중은 아무래도 키스를 해야 하는 건지 안 해야 하는 건지모르는 듯 갈 데 없는 손만 어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현중을 보던 정민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조심스레 눈을 감았고, 그런 정민을 본 현중은 살며시 눈을 내리깔며 정민의 허리에 제 팔을 감고 자신의 방향으로 조심스레 당겼다.
"......"
"......"
두 사람의 입술이 부드럽게 맞닿았다. 입술에 와닿는 따뜻한 온도가, 부드러운 감촉이 너무 좋았다. 잊고 있었던 이 느낌.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대는 이 느낌을 다신 잊고 싶지 않았다.
현중과의 키스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세상이 모두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사랑한다.'
이 한마디로는 마음을 다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새삼 느끼게 되었다.
당신과 함께라면 에이즈라는 건 아무래도 좋을만큼, 에이즈라는 걸 잊을 수 있을 만큼...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다, 김현중을.










